행복의 길을 찾으려면 희생의 자리에 서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0권 PDF전문보기

행복의 길을 찾으려면 희생의 자리에 서야

우리는 통일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을 중심삼고는 하나되기 쉽고 동정을 하기는 쉬운 것이로되, 마음을 중심삼고는 하나되기 어려운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도 정서 문제를 중심삼고는 더 어려운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일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을 소생이라고 하면 마음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은 장성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은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데 있어서 내가 나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평화의 동기를 이룰 수 있고 서로서로가 안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너를 위해서 있다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식구들을 위해서 있다 하는 데서만이 평화는 그려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서 있다고 하게 될 때에 비로소 자식들에게 있어서 안식의 보금자리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를 위해서 있다고 하게 될 때는 자식들에게 있어서 안식의 보금자리, 행복의 보금자리는 파탄이 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 앞에 있는 자식들이 '부모는 나를 위해 있고 나는 나를 위해서 있다' 하게 된다면 그 부모에게는 안식과 행복의 자리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불행한 것이요, 여기는 안식의 터전이 못 되는 것입니다. 즉, 식구 식구들이 다른 식구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데라야만 평화의 기반이 되고 안식의 터전이 되고 행복의 여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보다 식구들을 위해서 책임을 지고, 보다 희생하고, 보다 전체를 위하겠다는 입장에서 전체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수습하고 전체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책임지는 자리에 서면, 그로 말미암아 그 가정의 행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어버이가 그러지 못하더라도, 형제가 그러지 못하더라도 여기에서 희생을 각오하고 전체를 책임지고 위하는 아들, 식구면 식구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행복의 여건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천지를 중심삼고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보게 되면, 하나님 자신이 나를 위하라고 하는 자리에 있을 때는 그 자녀들은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 되시는 하늘이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있고, 자신을 위해서 싸워 나왔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늘은 인류를 위하고 인류를 위해 싸워 나온, 다시 말하면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있는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을 고수해 나온 것이 아니냐. 억천만사의 수난길을 하루같이, 하루의 생활 심정으로 보듬고 싸워 나온 하늘이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그 하늘은 언제나 장한 것입니다. 그 하늘은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 하늘은 언제나 우리가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그 하늘은 언제나 우리가 모시고 싶은 것입니다. 그 하늘과 더불어 우리가 언제나 하나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하늘이 나만을 위해서 있어라 하는 입장에 선다면, 그 하늘과는 통일이고 무엇이고 없는 것이요, 그런 하늘을 대해서는 추앙의 대상이고 존경의 대상이고 하는 것들은 전부 스러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은 더할 수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 앞에 오늘날 자녀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인류들이, 여기에는 수많은 민족도 있고, 국가도 있습니다. 그 수많은 국가들 중에 우리는 하늘을 위해서 있다고, 하늘을 위해서 이 나라가 있고, 우리 씨족이 있고, 우리 가정이 있고, 우리 개인이 있다고 주장한 그런 개인과 가정과 어떠한 씨족과 국가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두고 보면. 예수님이 하늘 앞에 행복의 길을 소개할 수 있고, 새로운 소망을 이어줄 수 있었던 것은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한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기도를 한 그때는 '나는 죽더라도 하늘의 안위를 위해서 죽는 것이 효의 길이 아니냐. 그것이 안식의 보금자리와 행복의 요건을 가져올 수 있고 가정을 살릴 수 있는 하나의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이 사상 일념에 서 가지고 죽음길을 다짐하고 나선 숨막히는 순간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선민사상 전체를 일관해 보더라도 그런 사상이 남아질 때는 그 민족은 발전해 나왔습니다. 또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따져 보더라도 그 나라의 주권자와 백성이 하나되게 될 때는 흥하였습니다.

선군이라고 하는 그 선의 이름을 갖고 남아진 사람은 백성을 위하는 임금이지 임금을 위하는 백성을 찾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선한 백성이라 함은 자기를 주장하는 백성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시키고 나라를 주장하는 백성을 말합니다. 그런 백성이 모여 살 때 그 나라는 반드시 역사를 일깨워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제 우리는 수십년의 역사를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