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자식의 도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0권 PDF전문보기

부모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자식의 도리

여러분, 우리 통일교회는 수난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려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은 선생을 위해서가 아니요,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면 내 개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뜻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길은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를 위해 일선에서 생명을 걸어 놓고 싸우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가 있습니다. 위성국가에서, 혹은 암흑세계에서, 지하에서 생명을 내놓고 싸우는 식구들이 있습니다. 즉, 세계적인 최첨단에 서서 싸우고 있는 식구가 있습니다, 혹은 나라를 대표하여 나라의 첨단에서 싸우는 식구도 있고, 자기 종족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동정을 한다면, 어떤 사람을 동정해야 되겠느냐? 종족을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도, 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도 보다 큰 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 즉 세계를 위해 죽음길에서 싸우는 사람을 동정해 주는 것이 사랑의 길이 아니냐. 두 자식이 있는데 두 자식 중에 하나는 병이 나서 죽으려고 하고 하나는 물에 빠져서 죽으려고 한다고 합시다. 병이 나서 죽으려고 하는 자식은 오랜 고통을 통해 지금 죽을 자리에 들어와 있고 물에 빠진 자식은 당장 빠져서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 할 때, 그 부모는 '아이구, 오래 고생한 아들을 먼저 구해 주어야겠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길에서 먼저 희생될 수 있는 길에 있는 자식을 부모는 살려주려고 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생명을 바치는 최일선의 자리에 선 사람을 동정해 주고, 밀어 주고, 협조해 주고 그를 위해서 전체가 하나되는 것이 원칙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종족을 위해서 일한다면 '아 내가 종족을 위해서 일하는데 교회에서 몰라주면 안 돼. 교회가 하나되어야지. 전체 통일교회 식구들은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협조해 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협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건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보다 큰 책임을 짊어지고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한 죽음길에서 싸우는 최일선에 선 무리를 위하여 그 국가 국민이 총단결해서 협조하는 것이 정의요, 그것이 이 세계의 전통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가 어렵다고 해서 그 환경을 포기해 버리고 도리어 자기를 변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기가 막힌 배반자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우리는 이만큼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때가 눈앞에 가까와 오고, 정상의 고개를 넘느냐 못 넘느냐 하는 때가 우리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되겠느냐? 일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보다도 마음을 중심삼고,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진행하고 있느냐? 그것을 중심삼고 거기에 일체의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어느 길을 가느냐? 그 가는 길이 있거들랑 그 길을 중심삼고, 내가 딴 길을 가더라도 부모가 가는 그 길을, 어머니 아버지가 가는 그 길을 자식으로서 염려해야 할 것이 아니냐. 자기가 다른 곳에서 살지만 하루의 생활은 그 마음과 더불어 하고, 하늘과 더불어 심정이 일치되는 자리에서 살아 나가는 것이 하늘 식구가 가야 될 본된 걸음걸이가 아니겠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은 식구의 이름 앞에 배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름보다도 실체적으로 배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8월 초하루를…. 여러분이 통일 교회에 들어온 후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맨 처음에 교회에 들어올 때 기뻐하던 그 기쁨이 다 스러져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이 정상적으로 뿌려진 하나의 씨가 되었으면 거기에서 열매를 맺어 가지고 수십 수백의 씨를 거두고, 그 씨를 다시 뿌렸으면 수십 수백의 봄날을 맞을 것이 아니냐. 적막강산 위에 한송이의 꽃이 피어나 수많은 꽃을 피워 꽃밭을 이루고 수많은 향기를 풍길 수 있는 향기의 동산을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니냐. 여러분 자신들이 그러한 향기를 풍길 수 있는 결실된 동산 가운데 서 있느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스스로 풍기는 향기를 좋아하는 것은 고독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향기 가운데에서 많은 향기와 더불어 내가 풍기는 향기는 고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이 깃들 수 있고 만물이 화동할 수 있는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만으로는 적적하고 외로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