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앞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통일의 출발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1권 PDF전문보기

주체 앞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통일의 출발점

그러면 이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하면, 하나의 길밖에 없습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야 되고, 가정에서 종족으로 가야 되고,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로, 세계에서는 천주로, 천주를 거쳐 가지고 최후에 골인해야 할 곳은 어디냐 하면 하나님의 세계를 품고 자유로이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방통행의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도 이 길을 위해서, 일생을 희생하더라도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이 길을 확대하기 위해서 가야 할 운명을 짊어진 자들이 통일교회 식구인 것입니다. 비단 통일교회 식구뿐만 아니라 연하여서 세계 인류가 그러한 비운에 싸여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에 주체적인 사명을 하기 위하여 결속하고 결의하고 나선 무리입니다. 이 길을 개척하는 것은 평탄한 길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개인 개인들이 몸과 마음을 통일할 수 없는 자신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원하는데, 몸은 그 반대로 원하는 거예요. 사도 바울 같은 양반도 역시 몸과 마음이 하나의 원치 않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알고, 마음은 원이로되 몸은 반대이니 육이 약하다는 이런 입장에서 탄식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 역사가 동원되어 가지고 싸워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도 가입되어 있고 사탄도 가입되어 가지고 싸워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를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타락된 우리 자체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안 되기 때문에 타락되지 않은 본연의 하나의 인격을 표준삼아 가지고 거기에 연결시키기 위한 운동을 해 나오는 것이 역사시대의 종교의 사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사상은 종교를 중심삼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올 때는 한 사람으로 오되, 그는 자기 한 사람의 역사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늘의 역사를 대표하고 인류역사를 대표하여 모든 수난길을 넘어서 가지고 통일적인 가치를 지니고 와야 될분이 아니냐. 그에게는 역사의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역사의 슬픔을 타도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결의된 신념을 가지고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자신의 역사를 갖고 와야 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 되는 데서만 통일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그 누구와 달리 그러한 인연을 따라 그러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모인 무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 하나가 오늘 밥을 먹고 사는 것은 현재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하나의 미성년자들은 무엇을 위해서 싸워 나가야 하느냐 하면, 참된 개인을 찾기 위해서 싸우는 것은 물론이지만, 참된 개인이 하나의 그 중심과 더불어 상대를 갖추기 위해서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원하는데 있어서 상대로서 할 것, 못 할 것이 없다는 거예요. 못 할 것도 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할 것은 물론 해야지만…. 이 못 할 것을 못 하겠다고 하게 될 때는 통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이 조건을 아직까지 자기들이 알고 갖고 있다 하게 될 때는 그 주체와 나와는 그만한 거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주체 앞에 해야 될 것이다 할 때는 하지 못하겠다는 일체의 내용이 성립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서는 주체 앞에 절대 복종하라는 거예요. 절대 복종하라는 것은 뭐냐? 순응하지 못할 내용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자. 부정해 버리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의 비례에 따라 반발할 수 있는 내용이 남아지기 때문에 이것을 완전히 제거시키기 위해서는 절대 순종이요, 절대 복종인 것입니다. 이것만이 해결 방안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결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는 말은 무엇이냐 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목숨을 걸고 대들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고 하게 될 때는 그건 하늘과 완전히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자기를 변명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 하면, 그 환경과 자기 변명의 요건이 이 앞에 막음길이 되는 것이요, 담벽이 되는 것입니다. 막음길과 담벽을 완전히 헐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하라. 여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뜻대로 말라는 거예요.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한 그 귀결점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메시아로서 세상 사람을 대표해 왔기 때문에 인간사정을 잘 아시는 메시아, 즉 예수님은 인간을 대표해 서게 될 때는 하늘 앞에 상충되고, 하늘을 대표해 서게 될 때는 인간 앞에 상충됩니다. 이 엇갈린 길 가운데서 이자택일을 해야 하는데, 이자택일을 하는 데는 인간세계에 섰다가는 하늘과의 담이 막혀 버리고 맙니다.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메시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버릴 수 없는 입장에 선 것이 또한 메시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뜻도, 즉 구주로서 인간을 구하기 위한 뜻도 있지만, 불순의 요인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자기를 부정하고 하늘의 뜻을 주장하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메시아의 고충된 자리를 우리는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자기 뜻을 중심삼지 않고 완전부정한 자리를 가려 나간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는 절대 복종입니다, 절대 복종. 여기에서 비로소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만일에 자기의 뜻을 강조하고 자기 변명을 하였더라면 부활이고 무엇이고 없는 것입니다. 그건 불가피한 결론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