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에는 반드시 전체를 탕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3권 PDF전문보기

끝날에는 반드시 전체를 탕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역사는 지금까지 영육을 중심삼고 꺼꾸로 올라가는 놀음을 했다는 거예요. 꺼꾸로 올라가기 때문에 세계 전부가 원수라는 거예요. 전부 다 내리친다는 거예요. 네 맘대로 올라오지 마라 이거예요. 쳐도 쳐도 맞지 않으니까, 상대가 되지 않으면 쳤던 것은 마냥 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서 맞지 않으려고 반항하게 되면 반작용으로 여기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지금까지 맞으면서 희생해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항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항하는 날에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이것은 올라갑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영적으로 싸워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영적인 탕감노정을 세계형으로 벌여 놓은 것입니다. 수백 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희생되어 가지고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횡적으로 세계형으로 벌여 놓았다 이거예요. 세계형으로 벌여 놓은 것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가 그렇지 않아요?종적으로 올라간 것을 횡적으로 탕감시키자는 거예요.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로 올라간 것을 왜 이렇게 전개시키는 것이냐?이거 왜 이렇게 해야 되느냐?이러한 길이 없으면 개인으로서 어느 역사시대의 세계를 대표한 탕감복귀라는 말은 절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은 개인이되 세계적 대표요. 국가적 대표요. 가정적 대표요. 개인적 대표라는 것입니다. 그런 탕감복귀의 본연의 원칙을 인간 세계의 그 누가 세계를 한 무대에 품고 한꺼번에 연결시켰느냐?요 개인은 가정을 대표하고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하고 천주를 대표한 개인입니다.

그 한 사람은 여기 있지만 (칠판 가리키시며) 여기에서도 환영받고, 여기에서도 환영받고, 여기에서도 환영받고, 여기에서도 환영받고, 여기에서도 환영받습니다. 여기에 있지만 여기의 대표요. 여기의 대표요. 여기의 대표요. 여기의 대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탕감복귀의 역사적인 과정을 통하여 바라보게 될 때, 끝날에는 반드시 전체를 탕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의 인연을 갖지 않은 한 사람이 나와야 됩니다. 가정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세계를 대표하고, 천주를 대표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정을 대표해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한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보다 가치적인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끝날이 되지 않고는, 우리 인류의 소망의 세계, 이상적인 세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론적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오시는 그분은 누구냐 하면 재림주라는 분입니다. 만일에 그 한 분이 오시어 이것을 연결시켜 놓으면 이 전체는 일시에 개인이자-개인은 어디에나 통하는 거예요. 개인은 세계의 기본도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은 어디나 통하는 것입니다. 종족의 기본도 되고, 국가의 기본도 되고, 세계의 기본도 되고, 하늘땅의 기본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인과 가정을 위주로 하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