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영광의 길을 가려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5권 PDF전문보기

참된 영광의 길을 가려면

그러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느냐? 예수님이 오셔서 승리한 예수님으로서 승천했느냐 할 때, 승리하지 못하고 승천했습니다. 살아서 승천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죽어서 승천했습니다. 예수님이‘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또 가룟 유다에게‘네가 나지않았더라면 좋을 뻔했다'는 이런 부정적인 요건을 심각한 자리에서 남긴 것을 볼 때에, 그는 영광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슨 길을 갔느냐 할 때에, 예수님은 영광의 길을 가기 위해서 왔지만 어떤 길을 갔느냐?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수난길을 갔습니다. 뜻을 이룰 수 있는 해방의 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갈 길만을 추구하고 나섰습니다.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된 희망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뜻만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끊고 십자가의 길을 간 사람이 예수입니다.

그러면 참된 영광의 길은 어떻게 되었느냐? 남기고 갔기 때문에 다시 오셔서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가 참된 영광의 길로서 남아지는 때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십자가의 길이 일방통행으로서만 될 것이냐 할 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박차고 영광의 길로써 혁신하고 비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부정하는 종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통일교회일지도 모릅니다. 기성교회에서 온 사람은 기분 나쁘겠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이론적으로 보아서 결과가 그래요.

그러면 십자가의 길을 부정하고 영광의 길을 나서야 할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보다 더 지독해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을 때, 여러분들도 그럴 거라구요. 우리 처녀 총각들, 앞으로 결혼하게 되면…. ‘다음에 결혼하게 되면 너보다 백 배 나은 아들딸을 낳고 싶어. 천 배 못한 아들딸을 낳고 싶어?' 하게 되면, 천 배 아니라 몇억만 배라 해도 나쁜 것은 싫지요? 그렇지요? '만배 나쁜 아들 낳을 거야, 만 배보다 영점 일 배라도 좋은 아들 낳을 거야? 하면 영점 일 배라도 좋은 아들 낳기를 원한다구요. 영점 영영영 일이라도 원하는 거라구요.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원한다구요.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더 낫기를 바랍니다. 그건 인간의 공통적인 마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모가 잘났으면 그 아들딸은 잘나야 되겠어요, 못나야 되겠어요? 못나게 되면 그 집 망하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잘살려면, 세계의 뜻을 품고 예수님이 승리한 기반을 가지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보다 나으면 됩니다. 안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라구요. 예수님이 밀알이 되어 죽어 심어 놨으면 그 심었던 본래의 밀알보다 많이 거두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간 예수님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 종교의 길이냐?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는 것을 좋아했더냐? 그것은 지긋지긋한 것이었습니다. 왜? 나라도 몰아넣고, 4천년 동안 준비한 유대교도 몰아넣고, 세례 요한도 십자가의 길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도 몰아넣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괜히 집을 나가 가지고 3년 공생애를 지낸 줄 알아요? 여러분이 갈릴리 바닷가엘 가보라구요, 거기에 비하면 한국의 토굴은 너무나 좋아요. 못난 어부들 형편없는 패들입니다. 사도니 뭐니 이름을 붙여 왔기 때문에 그렇지. 형편없는 패들이었습니다. 2천년 후인 오늘날에도 어부한테 시집갈래, 노동자한테 시집갈래 물어보면 노동자한테 시집가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처녀들의 입장이 아니냐. 그런데 2천년 전의 어부가 형편이 있었겠어요? 형편 없는 패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몰려다니다가 어쩌다 저쩌다 저녁밥을 얻어먹게 되어 가지고, 인연이 되어 가지고, 그들이 박대하지 않으니 그 집에 머무르게 되어 가지고 신세를 갚아야 할 예수는 할수없이 그들을 데리고 나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가 잘살기를 바라고 따라다녔지 예수님이 바라는 천하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래서 번번이 부딪친 것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정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