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의 기준이 되어야 했던 아담 해와의 생활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83권 PDF전문보기

인류 문화의 기준이 되어야 했던 아담 해와의 생활

오늘날 인류는 도탄 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금후에 인류가 가야 할 세계적인 길이 어떨 것이냐 하는 문제를, 이것을 싫더라도 생각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자체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그러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일원인 여러분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혼란상이 벌어진 것은 결국은 타락 때문입니다. 타락 때문에 이와 같은 결과가 된 것입니다. 심은 씨는 반드시 거두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어진다, 이렇게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잘못 심어졌습니다. 참된 이상을 심어야 할 것이 본래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한 인류의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심어졌기 때문에 잘못된 목적을 위해 가야 된다, 이런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즉 무엇이냐? 타락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여기서부터 알아봐야 되겠다 이거예요.

만일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이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었을 것입니다, 틀림없는 하나님의 아들딸. 그러면, 틀림없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으면, 그 아들딸은 어린 애로부터 소년시대를 거치고, 장년시대를 거치고, 노년시대를 거쳐 타락하지 아니한 할아버지가 되었을 거예요. 그러면 타락하지 않은 할아버지가 생겨났을 것이고,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생겨났을 것이고, 타락하지 않은 부부는 물론이요, 타락하지 않은 자녀, 자녀 가운데도 어린 애기, 복중에서 나온 애기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인간 세계에 있어서 타락하지 않은 인간이 가야 할 표준형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또, 타락하지 않고 살아갔기 때문에 그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새로운 하나님을 중심삼은 생활제도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타락하지 않은 자녀로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그 부모의 사랑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이 없어요. 다시 말하면, 어렸을 적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권 내에서,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이 땅 위에서 일생을 살다 갔을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나게 될 때도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났을 것이고, 살 때도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살고, 죽어도 하나님 사랑권 내에서 죽는다 이거예요.

그렇다면 그 아담을 중심삼은 일생이라는 것은, 그때 시대에 있어서 범위가 좁았을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개인적, 혹은 어떤 가정적, 종족적 환경일지라도 그 환경이라는 것은 제한된 그런 기준이 아닙니다. 모든 환경을 초월한 기준에서 전통으로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그 아담의 일생이라는 것은 세계인들이, 다시 말하면 수많은 후대 인류가 가야 할 표준적인 생활, 표본적인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완성이라는 것은 앞으로 올 가정완성의 표본이 되는 거예요. 또, 그 가정완성의 표본은 앞으로 수많은 자기 후손, 종족이 태어나게 되면 그 종족완성의 표준으로서 설정되는 거예요. 그 종족완성의 표준은 민족완성의 표준이 될 것이고, 민족완성의 표준은 국가완성의 표준이 될 것이고, 국가완성의 표준은 세계완성의 표준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로서 출발했고, 그러한 역사성을 띠고 오늘날 인류 역사가 발전해 나왔다면, 오늘날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이 절망에 부딪혀 가지고 방향을 못 잡는, 방향을 잃어버린 채 혼란한 세계 인류가 되지 않았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아니예요. 이와 같은 현실세계가 된 것이 본래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구상이 아니다 이거예요. 이 이상의 것입니다. 이 자리를 넘어서 보다 차원 높은,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 절대자가 구상하신 그 기준은 높은 차원의 세계였음에 틀림없다 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기준의 아담의 일생이라는 것은 인류역사 전반을 대표한 일생이다. 이렇게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생활해 나갔던 그것은 오늘날 인류의 문화의 전통이요, 그 전통은 역사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변천해 나올 수 없는 문화의 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결정지은 그러한 생애노정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이상의 것이 아니고는 변천시킬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어떠한 외적인 자극을 가지고는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금에 와서 속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외적인, 무슨 권력이라든가, 금전문제라든가, 지식문제라든가 이러한 외적인 문제에 의해 변할 수 있다고 볼는지 모르지만, 본래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서 세워진 사랑의 인연의 그 자리라는 것은 고차원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외적인 그 무엇이 변경시킬 수 없는 자리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아담이 살고 간 그 문화라는 것은 아무리 역사가 길다 하더라도 그 역사를 움직여 낼 수 있는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담 생활에 동반(同伴)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을 감히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영원한 것, 참된 사랑은 불변한 것, 참된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참된 사랑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되었다면 그 참된 사랑권 내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은 영원할 것이고, 그 사랑은 불변할 것이고, 그 사랑은 절대적이요, 유일적인 이러한 터전에서 문화적 배경이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찬양했다면 인류의 표본으로서 인류를 대표한 찬양을 했을 거예요. 그가 살림하는 것은 인류가 바라는 표준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러냐?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상대적 관계를 맺은 생활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부부로 이루어졌고…. 그 부부라는 것은 인류가 가야 할 표준적인 부부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아담 해와가 부부를 이루어 자녀를 낳아 가지고 기르는 그 모든 교육방법은 오늘날 인류가 고스란히, 백 퍼센트, 그냥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교육제도가 아니었겠느냐. 그리고 친척관계의 모든 단일 사회, 소수의 씨족적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세계사적이 아니었겠느냐.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동에서 왔으면 그 아담가정을 거쳐서 서쪽으로 마음대로 거쳐 갈 수 있는 것이요, 북에서부터 남쪽, 동서남북 사방, 어떠한 방향에서든지 가는 데, 아담가정, 혹은 아담종족을 거쳐가는 데 있어서 여기에는 막히는 곳이 없다 이거예요. 360도 방향, 어느 각도를 찾아가든지 직행하되, 그 가정이 부딪치지 않고, 그 종족이 부딪치지 않고, 환영하고, 순리적인 환경으로서 모두 응할 수 있고, 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겠느냐. 그것은 틀림없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