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역사를 통해 발전해 나온 종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98권 PDF전문보기

순교역사를 통해 발전해 나온 종교

그와 같은 것을 차원을 높여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국자가 자기의 국민이 피해를 당하고, 살해를 당하고 하는 비참한 환경을 보게 된다면, 그것을 보면 볼수록 피해를 입히는 국가에 대해 단결하고 노력해 가지고 전환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결심하게 된다면 그 사랑이란 조건을 중심삼고 충격이 된 동기로 인해 목적을 가능케 하는 길이 빠르다고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의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어떠한 목적을 중심삼고 직행하고 빠른 시일 내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직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은 좋은 환경과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는 그런 환경을 거쳐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핍박받고 어려운 환경을 거쳐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야 할 목적이 설정되어 있는데, 그 목적이 확실히 설정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목적을 반대하는 입장에 세워 놓고 이 사람은 내적으로 단결하고 결심하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피해자가 나오면 나올수록, 핍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후퇴하는 것보다 더 강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전쟁시에 고지를 점령한다 할 때, 조그만 고지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병력을 투입했는데 모든 동지들이 피를 흘리고 죽었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동지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을수록 후퇴하는 것보다 도리어 그걸 탈환하려는 반대작용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런 걸 볼 때에, 왜 하나님이 기독교라든가 모든 종교를 그저 희생시켜 나오고, 피를 흘리게 해 나왔느냐? 그것은 사랑의 불을 폭발시키기 위한 하나의 작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게 평범한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도 변치 않는 그런 폭발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핍박받고 죽음이 연결되는 그런 종교가 가는 길에는 폭발적인 사랑의 인연과 동기가 싹이 틀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냐? 동지애라든가 자기 목적을 사랑하는 힘이 완전히 폭발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역사에 없었던 종교역사 가운데 이런 비참한 순교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보통 인간들이 찾고 있는 사랑보다도 더 차원 높은 그런 동기를 자아내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 아니었더냐.

그러면 동지들이 유언을 하는 거라구요. '부디 내 뜻을 알아 가지고 내 소원성취를 해달라'고 하는 그런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그 수가 많을수록 그는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그 일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그렇기 때문에 잠을 잘래야 잘 수 없는 분함을 느끼고, 그런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연속적인 환경을 어떻게 캐치하느냐. 그런 것 같아요? 나 혼자보다도 그런 결심이 있는 하나의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렇게 볼 때에, 우리가 왜 종교를 믿게 되느냐? 종교를 안 믿고, 친구를 믿고 그러면 좋을 텐데 말이예요. 하나님은 공적인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충성을 다짐하고, 생명을 걸고 나서는 그런 자들 앞에는 언제나 주체적 입장에서 대해 주는 그런 주체자라는 거예요. 내가 눈물을 흘리고, 내가 몸부림을 치면 하나님도 그 이상 눈물을 흘리고, 몸부림을 치는 주체자라는 거예요. 공적인 사랑의 마음에 불타 가지고 가게될 때, 하나님은 사랑의 중심이요 주체자이기 때문에, 사랑에 자극된 마음에 언제나 상대가 되고, 또 거기에 대한 자극을 주어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을 보급해 주는 주체자다 이겁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동역자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그런 동역자가 없는데, 하나님이 동역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그 하나님은 아버지보다 낫습니다. 부모보다 낫습니다. 형제보다 낫다 이겁니다. 어떤 스승보다 낫고, 자기를 사랑하는 어떤 사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안다면, 사실이 그렇다는 걸 안다면 그분은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 분이냐. 그런 분으로 하여금 격려를 받고, ‘넌 이 길을 가야 틀림없이 성공한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너는 이 길을 가면 성공한다'는 권고의 명령을 받는 그런 자리라면 얼마나 그게 충격적이냐. 그걸 안다면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얼마나 투쟁하겠느냐.

사랑의 심정을 중심삼고 자기 일신을 희생시켜서라도 어떠한 사랑의 목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서는 그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자기보다 더 열심히 하신다구요. 그렇게 된다면, 원수들이 자기를 어떻게 노리고 있다는 등, 자기에 대해서 다 가르쳐 주면서 '너는 이렇게 가야 된다'고 가르쳐 주시는 그런 자리에 가게 된다면 그걸 포기할 수 있겠어요?「아니요」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랑의 충동의 힘을 받는 데 있어서 지극히 나에게 변치 않고, 언제든지 때를 넘어 나와 더불어 상관할 수 있는 그런 주체자를 찾다 보니, 그런 주체자가 하나님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을 나와 더불어 생활권 내에 접촉시키자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이 종교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면, 그런 사랑을 폭발시킬 수 있는, 공적인 사랑을 폭발시켜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원동력을 보급시켜 주시는 그런 주체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