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천운의 방향에 맞추기 위해 정성들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05권 PDF전문보기

종교는 천운의 방향에 맞추기 위해 정성들여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럼 종교란 것이 도대체 뭐냐? 종교는 어떤 길을 따라가느냐? 천운을 따라가되 멀고 먼 목적을 향해서 걸어갑니다. 종교는 멀고 먼 목적을 향하여 갑니다. 오늘날 기독교만 하더라도 예수가 왔다간 지 2천 년의 역사를 지냈지만, 다시 주님이 올 때는 끝날이 된다고 합니다. 그 끝날은 모른다 이겁니다. 지금까지 어느누구도 측정하지 못하는 그런 머나먼 날에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끝날이 올 것임에 틀림없다 이겁니다. 온다 이거예요. 그런데 그 끝날이 언제 찾아 오느냐? 모르게 찾아오는 겁니다.

여러분, 봄날은 겨울의 동지를 지나야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겨울과 봄이 교차된다' 하는 그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르지만 교차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열두 시 땡 하게 되면 그것이 오늘과 내일의 경계선이 되는데, 땡 하는 괘종소리나 혹은 종소리를 듣고 '아, 새날이 온다' 하고 알지만, 시계 중에는 틀린 시계도 있고, 여러 가지 시계가 있다 이겁니다. 진짜 세밀히, 몇억천만 분의 일을 두고 볼 때 진짜 맞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진짜가 아니지요. 최고 정확한 기원의 선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은 하나인데, 그 하나도 완전히 맞다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가운데 언제 봄이 찾아오는지 모르게 봄이 찾아오고, 언제 겨울이 찾아오는지 모르게 겨울이 찾아오고, 언제 가을이 오는지 모르게 가을이 찾아오고, 이렇게 연결하고 연결하면서 역사는 발전한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끝날이 왔다고 그러는데 그 끝날이 어느때냐? 끝날의 시작이 어느때냐? 한꺼번에 모두 왈카닥하는 게 아니라 알게 모르게 끝날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천운을 왜 따라가야 되느냐? 우리의 인생이 일생의 운명길을 가는데 천운이 왜 필요하냐 이겁니다. 그것이 문제라구요. 오늘의 제목이 '운명과 천운'인데, 일생의 운명을 지닌 사람들이 왜 하늘을 믿고, 자유의 모든 환경을 극복하면서 왜 어려운 길을 자처하고 미래의 세계를 추구하느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이겁니다. 그것은 천운을 맞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의 운명길에서 자기의 행운을 맞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운의 행운을 맞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이 아무리 행복한 운명을 갖고 있더라도, 대한민국이 잘되어야 여러분이 행복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러니 개인 운명도 국가의 운을 타야 됩니다 국가의 운을 타지 못하면 개인의 운명도 파탄이 납니다. 이런 논리가 성립돼요. 그러면 국가는 어떻게 되느냐? 국가는 세계의 운세, 아시아의 운세를 넘어 세계의 운세를 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성립돼요. 그럼 세계의 운세는 어떻게 되느냐? 하늘이 있으면 천운을 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처해 있는 운명권 내에서 보다 차원 높은 새로운 하늘 운명권 내에 접할 수 있는 생활권을, 생활적인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인생이 자기 운명길에서 보다 더 고차적인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국운이 있다 하더라도 관계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성현이나 예언자들은 어떤 사람이냐? 열두 시면 열두 시, 그 경계선에 가까와져서 오늘이 새로운 날이라 선포할 수 있는 때로 교체되게 될 때 자기의 생리적 기능은 물론이요, 생활적 기능까지도 그곳으로 방향을 맞추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렇게 본다 이겁니다.

종교가 지금까지 주장해 나온 것은 '끝날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끝날이 오기는 오는데 그 끝날을 누가 맞을 것이냐? 끝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이 맞는다고 보지만, 천 사람, 만 사람 전부 다 다르다 이거예요. 천 사람, 만 사람이 전부 다 다릅니다. 그러면 그 누가 진짜 끝날에 가까운 자리에서 끝날을 맞을 수 있느냐? 이는 천운을 위해 정성을 들인 사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교는 정성을 들이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구덩이가 있다면 그 구덩이를 뛰어 넘어 가게 될 때 박자를 맞추어야 뛰어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뛰어 넘어가기 위해서는 자기가 모든 시련을 거쳐 연단을 해 가지고 거기에 박자를 맞출 수 있게끔 뛰어야 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그래서 종교는….

종교는 종교 자체의 운세가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의 그 운명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면, 대한민국권 내의 운을 지니고 가야 할 환경이 지금의 통일교회의 운세라면, 이 대한민국권 내에 있는 운명을 가진 통일교회는 세계의 천운이 가는 방향에 어떻게 보조를 맞추느냐 하는 거예요. 그것이 금후의 역사 시대에 발전할 수 있느냐,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종교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천운을 맞기 위해서 입니다. 천운을 맞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역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가 메시아요, 그 사상이 메시아사상이라는 겁니다. 각 종교에는 메시아사상이 있다구요. 좋은 시대의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랜 역사를 두고 소망을 가지고 천운을 바라볼 수 있는 이런 종교가 되어, 거기에 모든 것을 집결시켜서 전체가 하나와 같이 나오는 그 종단은 천리라는 길을 따라서 모든 것을 관계짓게 된다 이겁니다. 하루라도 삼백육십 날로 떨어진 하루가 아니라, 몇억만 년 역사를 연결시킨 하루로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여기에 내가 섰다 하면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날들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천운이 가는 길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승리한 사람은 과거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 현재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이요, 미래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보다 차원 높은 곳을 향해서 정성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다 갖고 있는 거예요. 국민학교 학생들도 그렇지요? 뭐 맹세를 하더라도, 이거 져서는 안 되겠으니 내 운세를 그저 도와주소서 하고 비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 비는 것이 천태만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운이 진행하는 주파, 파동이라는 것은 짧지 않다는 거예요. 길다 이거예요. 몇천 년의 날도 사이클을 통해서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몇만 년의 날로 진행한다 이겁니다. 이렇게 볼 때, 목전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이쿠, 내일은 몰라. 오늘이면 그만 이지. 난 굵고 짧게 살지'라고 한다구요.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은 굵고 길게 살기를 바란다구요.

여러분이 기도할 때 '아, 하나님, 무엇을 이루어 주셨으니 좋습니다' 라고 하지요? 그렇지만 기도할 때 '하나님, 천년 후에도 내가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만년 후에도 이루어지지 않고, 수십만 년 후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내가 기도하겠사오니 이루어 주소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만년 후에 맞기 위한 것을 지금부터 일생을 걸고 정성들이고 준비한다는 말이 성립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