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사랑을 이룰 수 있는 훈련장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15권 PDF전문보기

종교는 사랑을 이룰 수 있는 훈련장소

인간은 내적인 소질과 외적인 소질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하기 위한 것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훈련 장소가 되는 게 무엇이냐 하면 종교라는 거예요, 종교.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자비(慈悲)를 말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석가 같은 양반은 자비로와야 된다고 한 거예요. 그리고 유교에서는 인(仁)을 말하는 거예요. 의로와야 된다, 어질어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또, 기독교는 사랑을 말한다구요. 그건 오늘날 현실세계, 사람들이 물질을 대하며 사는 그런 세계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차원 높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 사랑과 연결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종교 중에서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뭐냐?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하나님을 사랑의 주체로 추구했다는 겁니다. 추구했는데 남편같이 하늘을 추구했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부자의 관계로 묶여져 있다구요.

하나님 자신도 가만히 생각할 때, 인간들이 조작해 가지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하면…. 그 아버지는 몸뚱이만 가진 아버지는 필요없다 이거예요. 사랑을 중심한 아버지라 할 때 하나님도 생각한다는 거예요. 생각할 게 아니냐 이거예요. '하나님 아버지!' 할 때, '아버지!' 하면 벌써 다 통하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자기를 넘어서는 거예요. 내가 태어난 생명의 원천을 넘어서는 거예요.

이렇게 될 때에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우리 몸뚱이를 낳아준 그 아버지가 아니라구요. 어머니를 사랑하는 가운데에 내가 동참할 수 있게 나를 이렇게 낳아 주신 거룩하신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예요. 그러니 부모가 나를 빼 버릴 수 없다 이거예요. 부모의 제일 귀한 자리에 동참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있는 제일 귀한 것을 나눠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죽을 때에는 자식에게 상속해 주는 거예요. 왜 상속해 주느냐? 남에게 상속해 주지 왜 자식에게 상속해 주는 거예요? 사랑의 동업자요, 동참자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자,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 할 때, 고차적인 사랑의 마음으로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 아버지 이상의 아버지를 추구한다면, 그 아버지가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아무리 생긴 게 무뚝뚝하게 생기고 보기 싫게 생겼지마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당신은 내 아버지입니다' 할 때, 하나님이 '야 이놈아!' 하겠어요? '거 생각할 만하다' 그럴 거예요. '네 말이 근사한데' 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종교를 통해 절대자 되는 하나님에 대해 아버지라는 이름을 발견해 가지고 인간과의 관계의 술어로 우리 인간세계에 부여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눈물 지을 수 있는 효의 길, 이 세계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어려운 문제를 책임진 입장에서는 충의 길, 하늘땅을 중심으로 인간들이 선악의 싸움권 내에서 해방권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있는 인간을 사랑으로 구원을 주기 위해서는 성인의 길을…. 그런 길은 전부 다 사랑을 근거로 하지 않고는 무용지물이라는 거예요. 무용지물이예요. 안 그래요?

효자가 뭐예요, 효자가? 의례적인 입장에서 어머니가 배고파하시면 밥갖다 주는 게 효자가 아니다 이거요. 오늘날 유교 풍습에도 매일같이 부모를 대해 아침에 인사하고 다 그럽니다. 인사하는 게 보고 싶어서 해야지, 할 수 없이 인사하는 것은 효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이 그 가운데 밑받침되는 행동은 전부 다 선으로 수습되는 거예요. 그렇지마는 사랑을 빼놓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선으로 수습되는 게 아니라 악으로 수습되는 거예요. 가식이 되는 것입니다. 가식은 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남자로 태어나서 살게 될 때에, 내가 남자로 태어나 일생을 사는 데 있어서 그 표제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참된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할 때, 이것은 우선 선으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위해서 산다고 할 때, 거기에 나타나는 형식이나 내용은 전부 다 선의 권내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장(場) 같은 데 가 보게 되면, 옛날 피난 때는 말이예요, 평안도 혹은 함경도 여자들이 전부 다 물건을 팔고 그랬어요. 드세었다구요. '저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 사느냐? 먹기 위해서 저렇게 드세고, 저렇게 악착같이 저러느냐?' 할 때, '그렇다' 하면 '저게 먹기 위해서 저러는구나'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들딸이 열 명이 있어서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한푼도 깎아 주지 않고 드세고 악착같이 하더라도 그건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내가 거기서 속았더라도 용서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지 않고 반대로 자기 욕심을 위해, 돼지처럼 자기가 잘먹고 잘입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하게 되면 이놈의 쌍것이라고 욕을 퍼붓는다는 거예요. 그거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