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길은 자기를 희생하는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15권 PDF전문보기

사랑의 길은 자기를 희생하는 길

이렇게 볼 때 한 개인이 사랑을 표준해서 가게 될 때, 즉 사랑을 표준한 생활에서는 혹시 한때 잘못될 수도 있고, 그릇될 수도 있고, 곁길로 갈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선으로 포괄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사랑을 뺀 생활에 있어서는 모든 문제가 선으로 포용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악으로 취급받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일생을 중심삼고 그렇게 보낸다면 기나긴 역사를 두고 보면 종교라는 것이 뭐냐? 인생살이의 역사에 사랑의 방향을 중심삼고 추구해 나가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떠한 단체, 어떠한 나라에 관심을 갖겠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선을 표방해서 천년 만년 가려고 하는, 사랑을 중심삼은 표제 밑에 들어가는 단체에 대해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하는 결론이 나와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믿으면 하나님의 가호 아래 있을 수 있다, 이런 말도 타당한 말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사랑을 빼놓은 개인주의, 자기의 욕망을 위해 가는 사람은 끼익…. 하나님은 관심없다구요. 그것은 세상 악의 결과와 타협해 가지고 자체 파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우주를 치리하는 절대자가 계시고, 그 절대자가 바라는 이상의 형태를 역사노정을 통하여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할 때에, 사랑을 위해서 단체를 구성해 가지고 길이길이 그 길을 따라가려고 움직이는 단체가 있으면 하나님은 그 단체와 더불어 아니 갈 수 없다 이거예요.

사랑의 길은 뭐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한마디 말을 듣고 10년 고생도 극복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건 놀라운 거예요.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내와 약속한 한마디를 중심삼고 10년, 아니 일생 동안도 극복할 수 있다구요. 그거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극복하는 모든 과정이 험하면 험할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약속된 내용의 사랑은 보다 차원 높은 입체성의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거 인정해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여기 선 문 아무개라는 사람도 '당신 뭐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러고 있소?' 한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하나님 주류의 사랑의 세계를 따라가자! 그것은 성인의 도리의 주류요, 충신의 도리의 주류요, 효자의 도리의 주류요, 진정 사랑하는 부부들이 가는 도리의 주류입니다.

그 주류의 흐름은 작지만 물과 같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따라 영원히 세계와 우주와 더불어 관계를 맺어 영원히 흐르는 것입니다. 그 흐름을 환영하면 환영하지 막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흐름이 자기를 통해서, 자기를 거쳐서 흘러가기를 원하는 거예요. 저 산골에 있더라도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고 '아, 물줄기가 산등성이에 있는 우리 집을 통해 흘러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아무리 깊은 골짜기를 흐르더라도, 아무리 높은 곳이 있다 하더라도 그곳을 넘어 와 주기를 바라고, 지나가 주기를 바라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 선생님 보고 싶어요? 「예」 그거 왜 그래요? 무엇 때문에? '보고 싶기는 뭐가 보고 싶어, 이 쌍것들!' 이렇게 욕을 해도 좋다하고, 한 대 발길로 차도 좋다는 거예요. 그게 세상에 없는 통일교회의 비결이예요. 이건 그저 일을 시켜먹고, 욕을 하고 그래도 말이예요. 눈물을 철철 홀리면서도 본다는 거예요. '이 쌍것들아, 보지마!' 해도 본다는 거예요. (웃음) 그게 통일교회예요. 그러니까 다 미쳤다고 하지요. 그거 이상한 거라구요.

거 무엇 때문에? 본성의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예요. 본성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구요. 본성의 사랑은 영원히 들여다 봐도 '아이고, 보기 싫다'가 아니예요. 영원히 들여다 봐도 '보기 싫다'는 그런 결론이 안 나오는 거예요. 진짜 참된 사랑은 영원히 눈알이 튕겨나오도록 들여다봐도 '보기 싫다'는 결론이 안 나온다구요. '아이구, 더 보고 싶다. 싶다. 싶다…' 이러다 보니까 사랑에 화하게 된다구요. 들을 때에도 말이예요, '아이구, 12시, 2시, 3시가 됐는데 자야지'가 아니라 잠이 다 도망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의 세계는 자는 세계가 아니고, 쉬는 세계가 아닙니다. 영원히 영원히 움직이는데 움직이는 그것이 쉬는 것보다 좋고, 그다음에 자는 것보다 나쁘다? 「좋다」 참다운 사랑의 세계는 쉬는 것보다, 12시간 자는 것보다도 12시간 안 자는 게 좋다는 거예요. 보고 보고 또 보고 천년 만년 봐도 눈을 비벼대며 더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이라도 떠날 수 없는, 순간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참된 사랑의 세계를 하나님은 구상할 것입니다. 눈이 보더라도 무슨 눈이예요? 성난 눈이 아니예요. 그 뭐예요? '만면(滿面)에'가 아니예요. '만(滿)눈에'예요. 눈에 그저 웃음이 꽉차 가지고 그 눈만 봐도 '아름답다' 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그럴 거예요. 귀가 생기기는 말귀 같이 생겼고, 당나귀 귀같이 생겼지만, 듣는 귀를 볼 때, 자기의 말을 그렇게 참 듣고 좋아하는 귀를 볼 때 그 귀가 아름답다는 거예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