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선한 사람은 주고 싶어서 우는 사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4권 PDF전문보기

역사적으로 선한 사람은 주고 싶어서 우는 사람

선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천하의 참된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릇을 만들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좋은 것을 자기 뱃속에 몰아넣고도 좋다는 거예요. 꼭대기에 넣겠으면 꼭대기에 넣고, 밑에 넣겠으면 밑에 넣고, 중간에 넣겠으면 중간에 넣고, 장소를 개의치 않는다는 거예요. 어떤 데도 좋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뭘할 것이냐? 그 참을 가진 사람의 병이 무엇이냐? 그것을 보관하지 못하는 것이 병이 아니라 주지 못하는 것이 병이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천하에 꽉차 있는 참을 누가 가져도 상관이 없다는 결론은 자동적으로 나온다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을 교훈하게 될 때에 자식에게 악하라고 교훈하느냐? 부모는 마음을 갖추지 못해서 줄 것이 없다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있는 선은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것이예요. 자기가 귀하다고 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주고 싶고 거기에 이자의 이자, 변리의 변리를 전부 더해서 주고 싶은 것이예요.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천지에 참이 꽉차 있다 할진대 그 참의 주인이 누구이뇨? 그 주인은 참을 알고, 참의 맛을 느끼고, 참과 더불어 행할 수 있고, 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참은 개인의 것이 아니예요. 누구의 것이라구요? 「공동의 것입니다」 뭐라구요? 「공동의 것입니다」 공동지물(共同之物)인 것입니다.

복이 무엇이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복 받아라'고 하면 그저 좋다고 하지요? 자기 맘대로 살면서도 '어허! 복이 좋구나' 하는 자들은 강도들이예요. 모두 강도들이예요. 복은 공동의 물건인데 사적으로 사용하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자기의 종족도 꺾임을 당하고, 자기 일생도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복이 좋기는 좋지만 복은 지극히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동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요, 공동 권한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시간권과 공간권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이걸 지배할 능력을 가진 인간이 이 땅 위에는 없어요. 지배하려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선을 지배할 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됩니까? 정 모르겠다고 하면 어슴프레하게라도 알고 있으라구요.

그러면, 역사적 선한 사람, 역사적인 의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주고 싶어서 우는 사람, 이 세계를 자기 것으로 위임받더라도 세계 만민 앞에 주고 싶어하는 그런 분, 세계에 나가서 무엇을 주고 싶어하는 그런 지도자입니다. 그러한 지도자가 이 땅 위에 나타나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소망이요,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와 주고받을 수 있는 심지와 그러한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나타나는 때가 선한 세계가 이루어지는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복을 무한히 갖고 계신 복의 중심 존재이십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복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없는 것이 없어요. 여러분이 사랑하는 아내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는 분이예요. 알았어요? 여러분의 아버지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어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하며 울고불고하던 그 자식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는 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인생으로서 최고로 승리했다고 하는 자, 이 세상 어디에서 보아도 최고로 성공했다고 하는 자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결론이 나온다구요.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 그 하나님은 천하에 없는 참된 복을 무한히 갖고 있는데, 그 무한히 갖고 있는 참복을 오늘날 인간 앞에 만세를 통하여 주고 싶어서…. 때로는 죽임을 당하더라도 또다시 와서, 혹은 목베임을 당하더라도 그 피를 통하여 제물을 드리면서라도 주고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