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강의에 있어서 결론은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57권 PDF전문보기

원리강의에 있어서 결론은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어야

그것을 여러분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적인 기준이 이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여기에서 심정적 교류가 벌어진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것을 잃어버렸다 이거예요. 주체를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땅 위에서 주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은 무엇이냐? 아무리 어떤 산에 사냥을 가더라도 척 쉴 때는 내가 위로를 보내는 거예요. 나는 목적이 있다 이겁니다. 아무리 힘드는 일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그런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전부 다 그걸 맞춰 나갑니다. 또, 식구들에 대해서 내가 여러분 앞에 심정적으로 빚을 안 진다는 자신을 갖고 있는 것은 그거예요. 나는 언제든지 하늘 앞에 있어서 대상이 되는 거예요. 하늘 앞에 주체와 대상 관계에서 대상의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누가 한마디만 하게 되더라도 그게 가당한 말이면 확 들어옵니다. 우연일치가 아니예요. 언제나 관심이 거기에 있다구요. 그러므로 거기에 필요한 요소, 주체적인 요소가 갖추어지고 상대적 요소만 되면 지나가는 사람이 말하더라도 그것이 가당한 말이다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기준을 거쳐 나가야 된다구요. 이것은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강의를 못한다고…. 물론 강의를 못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 분야에서 심정적인 일치점, 그 위치를 어떻게 결정짓고 있느냐? 그 위치가 내 생명보다 강하냐? 내 말씀보다 강하냐? 내 힘보다 강하냐?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동으로 뛰쳐 나가게 될 때, 그 주위의 위치가 끌려 나가느냐? 혹은, 내가 서쪽으로 끌고 나가려고 할 때 그 위치가 이동되느냐? 내가 아무리 수욕을 당하고 내가 아무리 시험을 당하고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이것만이 나를 얽어매고, 이것만이 나의 주체가 되고 나를 수습할 수 있는 모체가 되어 있다 하는 기준을 확고히 갖지 않는 한 여러분들이 가는 길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여러분 앞에는 언제나 사탄의 제단이 여러분들을 끌어당기려고 한다 이거예요.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늘과 인연맺을 수 없다구요.

그것은 가정을 가진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주체면 주체라는 것을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요. 자기가 주체면 주체로서, 남편이면 남편으로서 부인이면 부인의 자리에서 자기가 그 주체라는 입장에 서면, 심정적인 면에서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언제든지 거기에는 자기의 본연의 위치를 알아야 된다구요. 모세가 팔을 들어 반석을 두 번 쳤던 거와 마찬가지로 본연의 위치를 망각하면 안 됩니다. 민족을 대신한 입장에 선 자기의 본연의 위치, 이것을 망각하다가는 전체가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본 주체성을 이동하지 말라 이겁니다. 이동하더라도 순식간에 갔다 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정성을 들이면 그 정성은 전부 다 하늘 앞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전부 다 날아가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여기서 주체가 되어 대상을 정해 가지고 이야기하면 이 대상을 믿을 수 있어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이 대상을 믿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건 얼마든지 배반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주체가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믿을 수 없는데 하늘이 여기에서 일치가 되느냐 이거예요. 이런 관계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원리 말씀을 하지만 이런 저런 관점에서 얘기하게 되면 서두도 안 나와요. 역사시대에서 새로운 진리를 선포하신 선생님의 모습이 그립다구요. 그럴 것이 아니예요. '이런 말씀을 이 암흑세상에 대해 제1탄을 던질 때 그때의 기분이 어땠을까? 또, 모든 대중을 대해서 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될 때 그 대중이 어땠을까? 그걸 보게 되면 지금 우리는 행복하구나. 뭇 사람이 환영하는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내가 말씀을 전하게 되니 참 천만 번 감사하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밤새워 눈물을 금할 수 없는 좋은 찬스의 자리를 여러분들이 다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는 길 위에 하늘 같이하지 않는다구요. 주인을 잃어버리고, 심부름하러 온 사람들이 주인을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들 하는 대로 해 가지고 일이 되겠어요? 그 나라의 일이 되겠나요? 하늘은 그렇지 않다구요. 내가 요즘 제일 걱정돼요.

지구장이면 지구장이라든가 협회장이면 협회장이 이런 문제에 있어서 시범을 보여 줘야 됩니다. 강의하면 강의하는 그때그때마다 전부 다 처음부터 그런 감정을 준비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반드시 선생님을 강의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강의하고 하나님을 강의하는 거예요. 강의를 그렇게 해야 됩니다.

무슨 강의를 하느냐? 역사를 강의하면 하나님을 강의하는 것이요, 선생님을 강의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자기를 드러내는 거라구요. 그렇게 해서 자기를 드러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강의를 한다면 강의를 뭘하려고 하는 거예요? 강의는 역사적인 사실인데 지나가는 말로써 하면 안 돼요. 하나님 자체를 강의해야 됩니다. 또,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 세상에 있어서 아직도 책임을 짊어진 선생님 자신을 강의하는 거예요. 나는 거기에서 그와 일체가 되어 가지고 천주의 모든 사정을, 내가 말씀을 통해서 안타까운 사정을 내 스스로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대신 보장해 주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결론에 들어가 가지고는 반드시 하늘의 심정과 일치화되어야 합니다. 시작도 일치화하고 결론도 일치화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이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심정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은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어떻게 어떻게 되어 가지고, 이렇게 되어 가지고 제1차의 슬픔을 맞이했고, 예수를 보내 가지고 제2차의 슬픔을 맞이했고, 그리하여 제3차 시대까지 거쳐온 그 슬픔을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기도하느냐? 물론 하나님의 심정을 놓고….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요. 여러분은 직접적으로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 가운데서 통회하는 거예요. '그와 같이 뜻을 대신한 이 길이 우리로 말미암아 수고의 길을 개척해서 오늘날 세계 만민 앞에 제시한 것을 생각할 때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받았으니 여기에서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크겠느냐?' 하는 관점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 줄을 타고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여야 됩니다. 그런데 이걸 떡 따놓고 말이예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렇게 해 가지고 움직이거든요. 그래서 심정적인 유대가 무너진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