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으로 주권자와 국민이 하나된 하나의 나라를 추구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74권 PDF전문보기

참사랑으로 주권자와 국민이 하나된 하나의 나라를 추구해야

몇 시예요? 벌써 두 시간이 다 되어 가누만. 이거 큰일났습니다.

자, 마음이 그래요. 그러면 여러분은 자랑하는 데는 무엇을 자랑하고 싶으냐? 오늘날 세계가 통일의 세계를 거쳐간다는 말을 했는데, 한 나라의 주권자를 진정한 역사를 대표한 주권자로 모실 수 있는 국민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무엇을 중심삼고? 참사랑을 중심삼고 주권자와 국민이 하나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렇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은 4년 만이면 바뀝니다. `참된 사람을 선거를 통해서 찾을지어다!' 하면 민주세계는 `아멘!' 할 것입니다. 이박사님, 그래요? 민주주의 좋아하지요, 이박사님? 「예」 통일교회 문선생을 투표로서 찾자! 아멘. 「아멘」 그렇게 해봐요. (웃음) 아이구, 우리 남편 투표로서 정하자! 아멘! 「노멘」

사랑은 저 깊은 골짜기, 보이지 않는 지하천으로부터 솟아 바위틈을 뚫고 나와 흘러흘러 가지고 대해를 만들고 싶은 것 아니냐 이거예요. 그런 거예요. 깊은 골짜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의 나라를 추구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무엇이냐? `새로운 조국을 찾아서'예요. 지금까지 대한민국 백성 중에서 나를 환영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까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처자까지도 나를 이해 못 했으니까요. 그러니 이웃 사촌이 이해하기를 바라고 이웃 동네 사람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그 자체가 역설적인 것이지요.

내 나라가 이해 못 하니 이웃 나라도 이해 못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도상에서 몰려 쫓겨다닌 사나이가 세월이 흐르니 어떻게 됐어요? 가정에서 쫓겨나고 종족에서 쫓겨나고 민족에서 쫓겨나고 국가에서 쫓겨나고 아시아에서 쫓겨나고 세계 국가들 앞에서 쫓겨났던 레버런 문이라는 사나이가 43년의 세월을 거치고 보니 어떻게 됐어요?

우리 성진이 어머니, 내가 사람 구실 못 한다고 그 일가가 몇 번 와서 이혼장을 써 달라고 강요하고 협박을 해서 내가 이혼장을 써 줬어요. 세상은 `문총재가 바람둥이가 되어 여편네와 이혼하고는 도리어 여편네가 잘못해서 이혼했다고 선전하더라' 합니다. 그렇지만 난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요전에 수원에 있는 우리 교구장한테 성진 어머니 오빠뻘 되는 사람이 왔더라는 거예요. 그때의 주모자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 일족이 전부 다 기성교회 골수분자여서,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기독교를 망친다고 해서 이혼시킨 주모자가 되었었다'고 직고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얘기를 했습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드러나는 거야' 하고 말입니다. 하늘을 따라가는 사람은 자기의 귀한 것을 빼앗기고 또 빼앗기고 또 빼앗기더라도 손해 안 나는 것입니다. 그거 참 신기해요.

내가 지금까지 감옥살이도 많이 했습니다. 눈물도 많이 흘렸지요. 그러나 나를 위해서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내 개인의 사랑의 행복을 찾아 눈물 흘려 본 적이 없어요. 철들자마자 서울을 떠나 부산 부두에서 일본까지 가면서…. 여기 저 한강 철교를 보면 지금도 생각나요. 그때 사람들이 도처에서 많이 죽어갔기 때문에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의 눈물을 가눌 길이 없어 손을 잡고 눈물을 떨구며 천천히 가는 거예요. 용산역을 거쳐가면서 눈물이 떨어져 철로에 뿌려지던 것이 생생해요. 사랑의 눈물을 뿌린 흔적의 동산에 승리의 깃발을 찾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는 사나이의 길이었어요. 그 마음을 보게 되면 애국적인 마음이지요, 젊은 가슴에. 왜놈들 앞에…. 그런 사연들이 많아요.

그렇게 애달피, 그렇게 누구한테 지지 않을 참된 길을 추구해 나오는 길에서 그렇게도 반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몰렸어요. 그게 행복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몰았느냐 이거예요. 세계의 구석구석 다 다녀 봤습니다. 다 다녀 봤지만, 머물 곳이 없었어요. 영계를 헤매고 지상을 헤매도 머물 곳이 없었어요.

어디 노동판에 가도…. 내가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노동판에 가 흙짐을 못 지나 굴을 못 뚫나 동발질을 못 하나, 그런 경험을 다 했습니다. 농사도 짓고, 못 하는 것이 없어요. 탄광에 가면 탄광의 지도자가 되고 농촌에 가면 농촌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말 잘하는 사람이 되고, 이론가를 만나면 이론가가 됩니다. 학자세계에 가 가지고는 학생시대부터 교수들을 놀려 먹고, 배고플 때는 교수들을 찾아가서 점심 사 달라고 했다구요. 그렇다고 억지가 아닙니다.

일본에 있을 때 한국에 가야 되는데 아주 어려우니 동경에 나가 가지고 귀가집 부인을 만나서 설득했습니다. `나 일본에 와서 이러이러한 일을 했소. 내가 돈이 얼마 필요하니, 당신 핸드백에 얼마 이상 있을 테니 3분의 1을 꾸어 주소' 한 거예요. 그 말이 하도 진지하니까 그 아주머니가 돈을 꾸어 준 거예요. 그것으로 차표를 사서 와 가지고는 그 3배를 내가 보내 줬어요. 그런 역사가 많아요. 사연이 많습니다. 그걸 다 나는 잊기로 했어요! 다 잊어버리는 겁니다.

왜정 때에 감옥에 가서 피눈물이 엇갈리는 고문을 받으며 냈던 비명 소리는 인류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정상의 자리를 추구하면서 냈던 소리였어요. 그 비명 소리의 정상에 올라가지 못하고는 불평을 할 수 없는 거야! 이놈의 자식들!

내가 이대사건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에도 들어갔습니다만 하나도 잘못한 게 없었어요. 망나니가 될 수 있는 자식들, 거리의 창녀들이 될 수밖에 없는 계집애들을 모아다가 순박한 귀부인을 만들고 일가문의 효자 충신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이 나라에 필요한 젊은이를 만들기에 생애를 퍼부은 사나이였다구요. 감옥에 들어갔을 때 구치소 부장이라는 녀석이 비난 비소하던 그것을 세상 같으면 이를 악물고 복수했을 거예요, 우리 성격으로 볼 때. 그렇지만 잊어버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