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이 연결될 수 있는 이상적 기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85권 PDF전문보기

참사랑이 연결될 수 있는 이상적 기준

참사랑은 왜 직선이 되어야 되느냐? 그거 간단해요. 간단한 말이예요. 직단거리를 통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직단거리를 통해야 되느냐 이겁니다. 이런 문제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직단거리….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이 사실이라 할 때 참사랑만이 일등할 수 있다 이겁니다. 직단거리를 통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고, 그다음에 전체에 영향을 주는 주체가 될 수 있다 할 때는 직단거리를 갖는 참사랑의 행동에서는 무엇이든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직단거리라는 그 한마디가 이런 전체 문제에 있어서 해결의 기점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수직이 있으면 이것이 직단거리이기 때문에 수직입니다. 딴 데는 길이 없어요. 또 수직을 대해서 횡으로 설 때는 직단거리이기 때문에 90각도입니다. 딴 데는 길이 없어요. 왜 90각도가 되느냐 하는 문제…. 딴 것은 그것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상을 그려가는 데 있어서 인간은 이중적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수직과 횡적 기반을 중심삼고 연결되는데, 이상적 연결이 되는 곳이 어디냐? 이상적 연결이라는 것은 반드시 이상적 기준이 있어야 돼. 그 이상적 기준이 뭐냐? 참사랑이 연결될 수 있는 접속점이다 이거예요. 그러니 종적 기준이 나와 연결이 안 되면 안 되는 겁니다. 횡적 기준이 나하고 연결되어야 돼요. 연결되면 어떤 곳에 연결되는 것이…. 둘이 다, 종적 기준도 좋고 횡적 기준도 조금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서로서로 좋다 할 수 있는 자리는 90각도밖에 없어요. 그래서 참사랑 외에는 90각도를 통하는 길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직이라는 것이 막연하지만 90각도 수직 외에는…. 왜 수직이 되어야 되느냐 하면 직단거리를 통한다는 그 개념을 무엇으로 끌어 내느냐? 이론적 근본을 무엇으로? 그것이 참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걸어가는 길도 참사랑 아니면 못 따라간다 이겁니다. `참사랑 앞에 생명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단거리라는 한마디가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신음을 하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가 부딪쳐 가지고 이렇다 할 수 있는 결정적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직단거리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직 앞에 참사랑의 직단거리는 결사적입니다. 생명을 걸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생명을 능가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는 부활권에, 영원한 이상권에 못 들어간다 이겁니다.

천국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하면, 전부 다 이상적…. 종적 사랑·횡적 사랑이 결탁한 기반에서 생애노정을 걸어간 사람들이 천국 가야 되는 것이 사랑이상을 중심삼은 논리적 결과라 할 때, 그렇게 산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 이겁니다. 그래 90각도, 이걸 중심삼고 이게 연장되면 이것도 연장되는 겁니다. 이게 연장되면 이것도 연장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그렇게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판서하신 것을 지적하시면서 말씀하심)

수직을 말이예요, 이걸 둘을 이렇게 대고 꽉 누르면 이것이 어디로 뻗어나가요. 뻗어나가면 어디로 뻗어나가느냐 하면 이렇게 안 뻗어나가요. 반드시 수직, 가운데로 이렇게 뻗어나갑니다, 왜? 힘을 받쳐 주기 때문에요. 이것이 수평선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잡아당기게 되면 어디에 와서 합하느냐? 반드시 제일 직각선에서 합한다 이겁니다.

(판서하심) 그건 왜 그러냐? 일체의 이념을, 참사랑을 중심삼고는 일체이념이 구성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종과 횡이 다른 게 아닙니다. 종이 높아질 때는 횡이 짧아지고 횡이 길어질 때는 종이 낮아지는 거지요. 그것이 일체의 이념적인 통합권, 일체권에…. 무엇이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사랑만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 이외의 것은 다 틀리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눈을 두고 보면 눈이 수직을 중심삼고 눈이 바로 되어 있어야 돼요. 수직이 되어 있어야 돼요. 수직의 초점을 맞추어서 봐야 된다구요. 초점을 맞추면 하나로 보인다구. 이 초점이 여기 이 중심과 이것이 맞아야 돼요. 여기 있는 이 수직선과 저 10리 밖의 수직선이 딱 맞아 가지고 그 거리가 같아야 돼요. 이게 틀리면 벌써 머리가 아프다는 겁니다. 초점이 안 맞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렇게 된 거라구요.

그러니까 그건 뭐냐 하면 말이지 수직 앞에 횡선을 긋더라도, 하나님의 참사랑이 수직선이라면 횡적 사랑은 절대적인 것인데, 절대적인 것은 생명을 걸고 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말하지 않았어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했는데 하나님 사랑이 뭐냐 이겁니다. 절대적입니다. 또 수직입니다, 수직. 수직 사랑 앞에 이와 같은…. 그게 첫째가는 계명이라구요. 둘째는 뭐냐?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이겁니다. 어떤 사람이? 제1계명 위에 선 사람이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같이 사랑하라는 겁니다. 상대적이라구요, 그게. 종횡이, 종적·횡적으로 되어 있는 걸 몰랐다는 겁니다. 내가 취할 것은 종횡을 박자 맞추는 이런 생애노정을 가는 거예요. 그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뭐냐? 횡적인 일에 시간을 많이 소모했기 때문에 종적인 개념이 희미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갈아놓아야 된다구요. 이것을 뚜렷하게 해 놓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 기준이 언제나 횡적 기준 앞에 영향을 미치게 해야 한다구요.

그럼 어디가 먼저냐 하면 말이예요, 횡이 먼저가 아니라구요, 종이 먼저지. 천지이치가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씨들이 말이예요, 자기 멋대로 뿌려져도, 거꾸로도 뿌려지고 옆으로도 뿌려지고, 360도 별스런 모양으로 전부 다 뿌려지지만 그것이 무엇을 닮아 나느냐 이겁니다. 횡적 기준을 닮아 나지 않는다구요, 종적 기준 닮지. 이게 거꾸로 서면 뒤집어 가지고라도 바로 서 나옵니다. 그게 발전 원칙입니다.

왜 그러냐 이겁니다. 생명은 참사랑을 중심삼고, 내재적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은 드러나기 때문에 생명의 길은 수직을 통하든가 수평선을 통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단거리라는 한마디가 간단한 게 아니라 생명을 걸고 타개하는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