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위해서 사는 사람을 원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94권 PDF전문보기

우주는 위해서 사는 사람을 원해

오늘 제목이 뭐냐 하면 `하나님과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집, 우리 집 하게 되면 우리가 사는 집이고 `통일교회' 하면 이건 통일교회의 집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이 모이는 집. `대한민국' 하게 되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의 집입니다. 그다음에 `세계' 하게 되면 세계는 세계 사람들이 사는 하나의 집과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영계와 육계를 합해 가지고 천주를 말하게 될 때 천주가 뭐냐? 과거 사람, 현재 사람, 미래 사람이 살 수 있는 하나의 집입니다. 그 집이 평화로운 집, 행복한 집이기를 누구나 다 원합니다. 자랑스러운 집, 소망적인 집…. 이런 것을 어느누구나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역사가 계속되고 계속되더라도 이것을 제거해 버리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 내가 처해 있는 곳의 행복을 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떨 것이냐? 하나님도 살림살이를 할 것이냐? 기성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살림살이 할까?' 하고 물어 보면 어떨까요? 하늘나라가 있으면 하늘나라를 중심삼은 중심 본부가 하나님이 계신 곳일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궁이 있다면 그 궁 가운데의 중심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는 집이 있다 할 때, 하나님이 사는 데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이냐? 싸움하고 산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사는 것이냐?

자, 이 집을 보고 물어 보면…. 이 통일교회는 교회의 집입니다. 내가 사는 집이라기보다 교회의 집입니다. 이 집보고 `야 너 통일교회 집아! 너는 어떤 통일교회 교인들과 살고 싶어?' 하고 물어 보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땡땡이나 부리고 살랑살랑 눈치나 보고 자기 이익을 위해 살랑살랑 사방으로 살살 다니는 사람을 원하느냐, 말없이 여기에 드나드는 사람 전체를 위하고 서로서로 좋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느냐 할 때 집은 곧장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첫번째냐, 둘째 번이냐?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두번째입니다」 그거 다 아는구만. 둘째 번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자, `교회 집은 어때?' 하게 되면 교회의 답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음에 우리 집, 내가 사는 집, 집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이냐? 집이 어떤 사람들하고 살고 싶으냐? '어떻게 살고 싶어?' 하고 묻게 될 때 그건 물어 볼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집을 위하고 집을 사랑하고 집 때문에 모든 것을 염려하고, 집이 염려하기 전에 내가 먼저 염려하고, 집이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내가 고통을 받고, 집이 어려움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먼저 생각하는 이런 사람과 살고 싶다 하는 것은 공통의 답입니다.

우리의 집, 우리 교회의 집, 나라의 집, 세계의 집, 천주의 집, 이 전부에 대해서 물어 본다면 그 답은 크나 작으나를 막론하고 다 같은 결론의 대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이 뭐냐?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서 사는 사람은 행복을 가지고 간다, 행복이 따라다닌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위해서 살고자 하는 사람 뒤에는 행복이 따라오기 마련이고, 위해 살려고 하는 데는 소망이 깃들게 마련이고, 위해 살려고 하는 데는 이상이 깃들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산다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영생이 있다면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데 영생이 있기를 바랄 것이냐? 영생 자체가 바라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과 영생하겠다'고 답하는 것입니다. 이 답은 우리 집에 사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집 사람, 여기 한 4백 명쯤 모였다면 4백 명 모든 사람들이 같은 욕구입니다. 또 삼천리반도를 중심삼고 볼 때 6천만 백의민족이 사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집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사는 사람에게는 나라의 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나라의 행복을 소개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은 나라의 소망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같은 답이예요.

앞으로 세계를 중심삼고 세계의 집이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그다음에 하늘나라가 있고 이 대우주의 집, 천주의 집이 있다면 천주의 집 자체가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답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사람에게 `너의 집에 자기를 위해 살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할 때 아버지한테 물어 봐도 아니라고 하고 어머니도 아니라고 해요. 그래서는 우리 집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살고 어머니 아버지가 살고 형제가 살고 거기에 일가 친척과 관계된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사는 데 있어서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문제가 벌어져요.

운동하면 그것이 관성작용에 의해서 돌아가는 힘을 따라 가지고 박자를 맞추어야지 그렇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게 되면 운동을 방해하고 큰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온 우주는 어떻게 사는 사람을 원하느냐 하는 결론을 짓게 될 때, 자기를 위하라고 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고 남을 위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중심삼고 살고 싶다 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