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주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01권 PDF전문보기

양심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주인

여러분! 우리 인간들은 일생을 사는 동안 자신과 제일 가깝고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주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모르고 죄에 잡혀 사는 불쌍한 무리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주인이 바로 자신의 양심입니다. 이 양심이 얼마나 여러분을 위해서 충고를 했으며, 밤이나 낮이나 나쁜 생각을 할 때는 '야 이놈!' 하고 지치지 않고 끌고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려고 얼마나 안달했습니까? 이처럼 마음은 참된 주인의 모습을 지니고 나를 보호하려는데도 배반한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우주로부터 귀한 스승으로 점지하여 받은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이 선생님을 여지없이 천대한 이 몸뚱이, 또 내 본연의 사랑의 마음을 이어줄 수 있게 한 부모 대신 보내 준 양심을 여지없이 유린한 이 몸뚱이, 이렇게 마음의 원수가 된 이 몸뚱이를 여러분은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나를 지키려는 양심을, 나의 주인과 스승과 부모의 자리에 서서 나를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서 천지의 대부모 되시는 하나님, 천지의 대스승 되시는 하나님, 천지의 대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일체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 제2의 주인을 유린, 무시, 천대한 이 몸뚱이를 보호해야 되겠습니까, 점령해야 되겠습니까? 이놈은 배고프다고 도둑질하고 좀더 편안하게 살기 위해 남을 탕두질하고 본연적 기원을 박대했던 이 몸의 세력권을 어떻게 처단하느냐 하는 문제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문총재는 이 문제를 놓고 누구보다도 피땀을 흘린 사람입니다.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이 나의 생활철학입니다.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세상만사와 어떤 연관을 가지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그랬습니다. 귀중한 삼대 손님입니다. 주인이 될 수 있고 스승이 될 수 있고 부모가 될 수 있는 이분을 내 몸이 천년 만년 모시고도 부족하다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 비로소 여기에 천운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을 위하고 싶어하지만 몸뚱이는 마음을 위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사회에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집에 문제가 있으면 형님이 나쁘고 누나가 나쁘고 아버지가 나빠서가 아니고 내가 나빠서인 것입니다. 자신부터 올바로 세워 놓고 남이 나쁘다는 제2, 제3의 비판기준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되어야 떳떳이 하나된 세계에서 살 수 있지, 내가 하나가 못 되었는데 전체가 하나된 거기에 어떻게 가 끼이겠습니까? 자동적으로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짓밟고, 마음을 무시하고, 마음을 피곤하게 하고, 마음을 조이게 하는 몸뚱이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몸뚱이를 잡아서 마음과 같이 위할 수 있는 내가 되었을 때는 행복이 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임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화만사성'이라고 했습니다. 내 집안 내 개인이 편안하려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