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단계 높은 존재가 되려면 사랑의 문을 통해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08권 PDF전문보기

한 단계 높은 존재가 되려면 사랑의 문을 통해야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왜 계시기 시작했느냐? 왜 계시느냐? 무엇 때문에 계시려고 하느냐? 사랑 때문에 계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의 상대를 창조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창조의 본질적 이상을,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을 그동안 우리가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피조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계의 모든 존재, 광물세계·식물세계·동물세계는 전부 다 상대적 관계를 갖고 존속하는 것입니다. 광물세계도 그래요. 광물세계만 해도 플러스 이온이나 마이너스 이온이 상대적으로 맞는 것끼리 합한다는 거예요. 원소로 말하면, 108가지의 원소들이 있지만 그것이 아무 원소와 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야, 이놈아, 이것하고 합해!' 해도 합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자기와 상대적 요인이 통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아무리 `야! 합해서는 안 돼!' 하더라도 그 사랑길을, 서로 하나되겠다는 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막을 수도 있겠지만, 그 지으신 법을 중심삼고 보면 그것을 보호해야 되고 그것을 장려해야 되고 그것을 키워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은 자기의 상대적 존재와 하나되려고 움직이는 존재를 부정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물세계를 비롯하여 모든 세계가 자기의 상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상대세계를 지었느냐? 주체와 대상이 무엇을 중심삼고 엉클어져 나가느냐? 급은 낮지만 그들도 사랑을 중심삼고 합하는 것입니다.

식물세계도 마찬가지예요. 수술과 암술이 전부 상대적 관계에 있어야 합하지, 고운 것끼리 아무리 갖다 맞춰도 상대성이 아닐 때에는 통할 수 없어요. 하나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광물세계 식물세계 전부 마찬가지예요. 동물세계도 그렇지 않아요? 왜 수놈 암놈으로 생겨났느냐? 자기가 생겨나고 싶어서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진화해 가지고 생겨났다고도 말합니다. 진화라는 말이 간단한 말이 아니예요. 복잡하고도 어려운 말입니다. 오늘날 학계에서도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진화론은 지나간 역사상의 낡은 신발짝같이 지워 버리는 때가 됐다는 거예요. 그 차원의 세계를 훨씬 넘어 있습니다.

진화론에서는 아메바에서 사람까지 발전했다고 봅니다. 발전이 얼마나 복잡해요. 한 단계 더 높은 생물이 그냥 그대로 환경에 적응해서 발전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한 단계 높은 존재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수놈 암놈, 플러스 마이너스의 사랑 과정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에서는 이런 문제를 무시하고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진화하는 것이 플러스 자체만으로 쭉─ 올라간 것이 아니예요. 십분의 일의 단계에서 십분의 이의 단계로 한 단계 높이 올라가려면 반드시 수놈 암놈이 사랑의 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발전적 존재가 존속하게 되어 있지 사랑의 문을 통하지 않고 그냥 진화해요? 똥개 같은 녀석들.

수놈에서 수놈으로 갔다가 다시 암놈으로 가고 또 암놈으로 가고, 이렇게 갈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 방향성을 보면 반드시 사랑의 문을 통해서 차원 높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그걸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진화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문을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가 자연히 됐어? 이 멍텅구리 녀석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은 공산주의와 유물론을 다 때려잡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학적인 근거를 제공한 것이 바로 진화론입니다. 대외적으로 자연과학세계에 있어서 공산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연결시킨 것이 그들로 보면 위대한 공헌이겠지만 결국 위대한 파괴적 행동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시간이 많이 가겠어요.

진화에 대해 한 가지 더 얘기하면, 자연계에 운동이란 것이 있습니다. 힘이라는 것이 있어요. 힘이라는 것을 볼 때, 힘이라는 것은 작용하게 되면 작아지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힘의 원칙은 입력보다도 출력이, 어때요? 커요, 작아요? 「작습니다」 작지! 작용하면 작아지는데 큰 것이 어떻게 나와요? 이건 모순된 논리입니다. 어떻게 큰 것으로 발전할 수 있어요? 그 제3의 힘을 누가 보충했느냐 이겁니다. 그 자체가 제3의 힘을 보충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자제력을 갖고 있느냐? 노(No)!

더 나아가서는, 방향성을 누가 제시했느냐 이겁니다. 큰 것으로 올라가는 데 있어 그 방향성을 누가 제시했느냐? 왜 직선으로 올라가야 되느냐 이거예요. 뒤로 돌아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고, 전후 좌우 동서남북 사방 팔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 곳으로만 갈 수 있느냐 이거예요. 또 그 자체가 방향성을 향진시킬 수 있는 자제력을 갖고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까지 갈 수 있어요? 어떻게 수천 급의 존재를 연결시켜 가지고 고장도 한 번 안 나고 사람까지 왔어요?

또 남자는 왜 태어나고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진화하기 위해 태어났다면 사랑이라는 논리를 세워야 됩니다. 사랑이라는 논리를 세우게 된다면, 거기에는 가정의 사랑의 방향, 국가의 사랑의 방향, 세계의 사랑의 방향, 하늘땅의 사랑의 방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수놈 암놈이 누가 원해서 태어났어요? 의식이 먼저냐 실재가 먼저냐 하는 문제, 사유와 존재 문제는 철학세계에서도 문제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당은 사유는 전부 다 칸셉(개념)이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