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모의재판 모델이 된 문총재 재판사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14권 PDF전문보기

대학에서 모의재판 모델이 된 문총재 재판사건

그리고 내가 1984년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인데, 원래는 1984년 12월까지, 레이건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전에는 특사를 내린다고 감옥에 있는 나한테 연락을 했다구요. 왜 그러냐? 미국 법을 중심삼고 볼 때 이것은 비법적인 처사 중에 이런 처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에 변호사가 70만 명이 있습니다. 이 70만을 거느리고 있는 변호사회 본부라든가 지부에 이게 문제가 된 것입니다. 미국이 어쩌자고 이런 역사적 오점을 남겼느냐 이겁니다. 이게 문총재 사건입니다.

현재 미국의 수많은 대학에 있어서 문총재 재판사건은 모의재판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돼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미국이 이렇게 잘못했다는 것을 교육하기 위해서 그런다는 거예요. 그렇게 유명한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 회사는 전부가 내 편입니다. 이걸 중심삼고 이 변호사들과의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에. 이 변호사세계와 관계 안 맺는 단체가 없습니다. 종교단체든 무슨 단체든 전부가 이 장(長)들을 전부 꿰차 가지고 그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내가 미국 가서 재판을 얼마나 했느냐 하면 5백 번 이상 했습니다. 몇 번이라구? 내가 뭐라고 했어요? 「5백 번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섯 번이라고 그랬나, 50번이라고 그랬나? (웃음) 듣긴 바로 듣고 있구만. 생각해 보라구요. 5백 번 이상을 재판했습니다. 그 배후에 얼마나 비참사가 엉클어졌고, 백인들의 교활한 역사적 본성이 얼마나 반응돼 지나갔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 언론기관을 통해서 잡아죽이려고 했지만, 잡아죽이지 못했어요. 내가 하도 유명하니 잡아죽이질 못하지, 죽이질 못해서 남겨둘 뿐이지, 공산당에 파이프를 대 가지고 주스를 마시는 리버럴한 계통의 이 녀석들은 전부 다 `저놈 죽으면 좋겠다!' 그랬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구요.

그런 싸움을 해 가지고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서 레이건 행정부를 도운 것입니다. 그래, 재판을 시작하면서 [워싱턴 타임스]를 만들었습니다. 알겠어요? 제1회 자금을 지출하는 것을 법정투쟁 하는 테이블에서 사인한 것입니다. 나를 잡아죽이려는 미국을 살리기 위해서 싸움한 거예요. 그게 유명한 거예요. 그런 사실들을 지금 지난날의 역사로서 회고하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카우사(CAUSA;남북미통일연합) 교육을 받고, 에이 엘 시(ALC;미국지도자회의)에 참석하고, 에이 에프 시(AFC;미국자유협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 역사적 사실과 레버런 문을 소개 안 할 수 없습니다. 레버런 문의 사상이 어떻다는 걸 소개하려니까 왜 자유세계에 와서 고생하느냐 하는 모든 문제가 돈이 그리워서가 아니요, 사람이 그리워서도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미국 자체가 돈을 가지고 사람이 합해 가지고 나를 반대하고 잡아죽이려고 모의하는 그런 풍조 가운데 왜 나타나느냐?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게 위대한 하나의 전기(傳記)가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브레이크를 거는 것입니다.

그래서 1980년대를 넘어서 10여 년 동안에 부시 대통령까지 내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댄 퀘일 같은 사람은 [워싱턴 타임스]에서 추천해서 빼냈습니다. 이놈의 자식, 젊은 녀석이 사람 노릇 할 줄 알았더니 틀려먹었더라구요. 백인이니까 도의적인 생활을 모르더라구, 이놈의 자식. 다 모가지 따 버리려고 생각하고 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