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갈림길에서 돌아서야 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53권 PDF전문보기

역사의 갈림길에서 돌아서야 돼

요즘에 선생님이 태어난 생가가 성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지를 만드는 걸 반대했다구요. '성지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고 있는데 만나는 그 자리에서 나는 가만히 있는데 김일성이 '선생님의 생가를 잘 꾸며 가지고 성지를 만들고 통일교회의 순례지를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다구요. 그래 가지고 윤기복과 김달현한테 '그것 전부 다 새로이 정비해 가지고 성지를 만들어!' 하더라구요. 그러니 안 만들 수 있어요? 다 만들어 놓았다구요.

그래, 이제 통일교회 교인들은 거기에 가서 찬송 부르고 예배보고 춤추더라도 괜찮습니다. 다른 데서는 찬송도 할 수 없고 하늘 앞에 기도도 드리지 못하지만 거기 가서는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성지가 되어 있다구요. (박수) 원래는 매달 일본 식구들이 3백 명씩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전에 자기들이 핵무기를 중심삼고 문제가 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교포와 일본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3만쌍 결혼식 때에도 배후를 통해 가지고 약속하기를 3만쌍이 전부 다 삼팔선으로 넘어오면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입니다. 3만쌍이 삼팔선을 넘어가려면 버스가 몇 대가 필요해요? 한 대에 50명이 탈 수 있으면 오 육은 삼십(5×6≡30), 6백 대인가? 50명씩 잡으면 그렇지요? 6백 대가 전부 다 넘어갔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차 거리 잡고 버스 한 대의 길이가 10미터라고 하면 그 거리가 얼마예요? 한 대당 30미터를 잡는 것입니다. 그러면 몇 킬로예요?

윤박사!「18킬로미터입니다.」18킬로미터면 몇 리예요?「45리입니다.」45리의 길이의 차가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삼팔선이 얼마나 와해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가면 그 사람들이 뭘 하겠어요, 어디를 가겠느냐구요? 선생님의 고향을 갈 것입니다. 고향 갈 때는 뭘 타고 가겠어요? 걸어가지 않고 차를 타고 가는 데 그 연도에도 그 영향이 얼마나 크겠어요? 삼팔선을 넘어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만 있지 않고 금강산에도 갈 것이고 백두산을 가고, 묘향산을 거쳐오는 것입니다. 이건 소문내지 말래도 남한에서 문총재 중심삼고 6백 대의 버스가 들어왔다고 왕왕거리고 야단일 것입니다. 그걸 생각을 해 보라구요. 2천만의 충격이 얼마나 크겠어요? 희망의 꽃이 핀다고 얼마나 가슴이 부풀어오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지는 모든 전부를 보고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문총재의 사상이 무엇이냐 하고 다 들여다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를 보면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 흑인이나 백인이 다 섞여져 있는 거예요. '야, 북조선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데, 한 단체가 세계인들을 품고 국가를 넘어 결혼시켜 주는구나!' 하고 놀랠 것입니다. 서로가 생명을 각오하고 결혼을 해 가지고 국경을 넘어오는 걸 보게 되니 놀라운 사실이지요. 상부의 정신적 구조에 미친 영향이 어떨 것이고, 하부의 정신적 구조에 미친 영향이 얼마만큼 클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풍토에 있어서 완전히 문총재의 기준을 중심삼고 남한의 학생권까지도 전부 다 그 영향권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래 놓고 그 사람들은 어디 가 있느냐 하면 명사십리 알지요? 원산에 명사십리가 있습니다. 그래, 10리 벌판에 소나무뿐이고 모래가 하얀 백사장입니다. 해당화가 붉게 피는 백사장 위에 천막을 치고 소나무 아래서 전부 다 담요 하나만 깔고 뒹굴면 호텔의 1등실보다 낫지요. 별을 보고 꿈을 꾸고 이럴 수 있는데 말이에요. 거기에서 부처끼리 지내보라구요. 얼마나 로맨틱하고 역사적인 그 기록이 얼마나 귀한 재산으로 남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데 이걸 이 정부가 전부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자기들이 공개하기도 두려워하는 거예요. 운동권 학생들한테도 얘기해 주면 '세상에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 그러고 있다구요. 그렇지만 이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을 못 믿겠지요? 김일성과 문선생이 만난 비디오 한번 보고 싶어요? 문총재와 김일성의 얼굴 자세를 보면 누가 늠름하고, 누가 주체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끌고 다녔지, 김일성의 안내를 받지 않아요. 그 사람은 손이 좀 떨고 이 사지가 자유롭지를 않더라구요. 나보다 7년이 위니까 80세가 넘었습니다. 이러니까 형님뻘이 되지만 내가 붙들어 가지고 끌고 다녔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 주변에 있던 보안국의 책임자 패들이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릅니다. 김일성의 몸이 다치면 사형이라구요. 즉결처분입니다.

그러니 이런 걸 볼 때 주변 사람들의 신경이 전부 갔던 것입니다. 김일성이 눈짓을 해 가지고 '퍽' 그러고 있더라구요. 그래, '야 이제는 자유천지다!' 해 가지고 막 끌고 돌아다닌 것입니다. 내가 끌고 다녔지, 내가 끌려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래 놓고 책상을 치면서 '주체사상을 가지고는 안 된다. 하나님사상을 가지고 해라!' 한 것입니다. 책상을 두드렸는데 거기가 어딘 줄 알아요? 만수대 국회의사당의 한복판에 서 가지고 책상을 두드리면서 얘기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국가 감시요원, 경찰 감시요원, 김일성 시위대 감시요원 등이 비밀스럽게 기록을 하는데 내 놓고 들이 까버린 것입니다. 내 말을 들어라 이것입니다. 그것을 전부 다 녹음해 가지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다 듣는 것입니다.

내가 일 하러 갔지, 김일성의 비위 맞추러 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듣겠으면 듣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뭐 이래 가지고 내 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안 하면 너희 나라가 망하지, 내가 망하질 않는다. 네가 아무리 해도 내 갈 길을 못 막아. 탕자를 구해 주는 부모를 누가 막아?' 이런 것입니다. 옆에 있던 박총재, 김효율은 아주 새까만 오돌이 됐습니다. 번데기가 되어 가지고 '이제 나 죽었구나.' 해서 벌벌 떨고 있더라구요. 그러지 않았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돌아서야 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