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하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77권 PDF전문보기

신앙생활은 하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

그래서 결론적으로 하늘을 모시는 생활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생활, 모시면서 같이 사는 생활입니다. 이걸 언제나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 길을 안 가면 편안치를 않아요. 벌써 길이 아니면 몸에 지장이 와요. 환경에 지장이 온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전부 다 하늘을 모시고 같이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아침에 해가 뜨고, 점심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은 변하질 않아요. 천년 만년 다르지 않습니다. 그 궤도가 틀리게 되면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갑니다. 그래 사랑의 마음, 참사랑의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참생명·참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서 하나님과 같이 언제나 산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기뻐하며 살고 자기가 오고 가는 생활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대상이니 주체와 대상은 하나된다고 할 때 이 자연과 하나되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적인 관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부모가 나를 길러주는 것은 잠깐입니다. 자랄 때까지 사회환경에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게 될 때는 부모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돼요. 자기 독자적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과의 종횡의 사랑, 하나님과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서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또 가정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것이 만물의 주체적 입장에서 사랑하니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돼 가지고 이 모든 만물들을 움직이기 위한 여기서 주체를 만들기 위한 생활입니다. 그 창조적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새로운 것을 가졌으면 나눠주어야 되고, 나눠줬으면 또다시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받기 위하려니까 겸손해야 돼요. 받기 위하려니 겸손하고 정성들여야 됩니다. 그래 받아 가지고는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정성들인 사람이 무서워요. 정성을 무한히 들인 사람은 무한히 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면 배타고 낚시질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에서 고기를 잡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 구원섭리와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고기라면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밑감을 좋은 걸 꿰어 넣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든든한 줄 해야 되고 낚싯대도 좋아야 되고 모든 걸 갖추어 가지고 잡아야지, 줄도 약하고 밑감도 나쁘고 낚시도 나쁘고 낚싯대도 나쁘고 잡는 기술도 나쁘면 그것 못 잡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는 것도 딱 고기 잡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내가 이 세상에 있어서 성공하려면 내 자신이 낚싯대와 같은 입장에서 좋은 줄을 걸고 좋은 밑감을 걸어서 낚시를 만들어 가지고 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낚아지질 않아요. 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균형이, 상대적인 여건이 맞아 가지고 거기에 수확이 벌어지지, 상대적 여건이 맞추지 않으면 수확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이 아니예요. 전체와 같이, 만물과 같이, 인류와 같이, 하늘땅과 같이, 하나님과 같이 산다 이거예요. 그래, 만민이 바라보는 눈, 좋은 눈, 좋은 오관, 좋은 몸, 그것도 하나님이 바라보는 오관, 그러한 좋은 몸으로서 같이 살 수 있다 하는 이것을 자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고 살게 되면 그 사람은 그냥 그대로 종교가 필요 없어요.

자기가 옷 하나 잘 입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냐 이거예요. 나무처럼 푸른빛을 가지고 스스로 자라나는 그 만물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박물관에 가게 되면 그 골동품들, 인간이 쓰다 남은 것이 비싸다 하지만 이것은 몇억만 년 된 골동품입니다. 나뭇가지 하나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랑하고 뭐 어떻고 그런 것을 보게 된다면 만물이 웃는다는 것입니다. 쓰레기통과 같아요. 그걸 좋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는 대번에 이 우주를 생각하고 우주와의 관계를 중심삼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나라면 나라라든가 역사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자기를 생각하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다르다구요.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