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집안 이야기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281권 PDF전문보기

최씨 집안 이야기

그래, 최씨네 집안이 유명합니다. 북한에 있어서 기독교를 유치한 것이 이 최씨네 집안입니다. 교회를 성진이 어머니 본가 집터 옆에다 지었어요. 공로의 집안이라구요. 거기서 촌촌이 연결되고 그런 거예요. 바닷가니까 이렇게 들어온 거라구요. 그렇게 유명한 교회라구요. 그 교회를 어머니 본가 터에다 지었다구요.

그러다가 열심히 믿던 사람들이 신사참배가 벌어지니까 교회가 두 조각이 난 거예요. 그래서 그 어머니로부터 성진이 어머니를 비롯한 딸들 전체가 신사참배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지하교회에 나간 거예요. 이렇게 오빠하고 갈라진 거예요. 이 오빠는 세상 편이라구요. 외적인 일가는 자기 교회에 나가는데, 이 패들은 부정하는 입장에서 홀로 갈라져 가지고 지하교회에 나간 거예요. 그런데 전부 다 가르침을 받는 여자라구요. 그러다가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이 됐는데 그 도에서 유명한, 기독교를 중심삼고 정주군이나 선천군이나 신의주까지 통하지 않는 데가 없었다구요. 부자라는 부자들에게 알려져서 최씨네 누구 딸이라고 해 가지고 며느리로 얻겠다고 경쟁하는 판국인데, 약혼 신청 들어온 것이 스물세 사람이 되더라는 겁니다. 기도해 보니까 허락질 않는다 이거예요. 사진을 보고 별의별 기도를 다 했더구만.

그래, 우리 이모뻘이 되는 사람에게 결혼하는 데 있어서 평안북도에서 제일 부잣집 처녀 총각을 맺어 줄 혜택을 준 거예요. 그것도 역사라구요. 혜택을 주었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 집을 드나들면서 그 집 딸이 이름이 나 가지고 문중에 소문났기 때문에, 이모뻘이 되니까 나하고 연분을 맺어 주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벌써부터 어머니로부터 내가 그런 말을 들었다구요. 나는 그런 생각도 안 했는데 말이에요.

그래 가지고 사진을 달라고 하는데도 나는 주지 않았는데 어머니를 통해서 내 사진을 갖다 보였다구요. 그때가 왜정 말기입니다. 내가 대학교에 갔으면 학병으로 가야 합니다. 나는 공과계통이니까 대학교를 안 갔지요. 이래 가지고 그 와중에 정신대에 나가야 한다고 소문이 났으니 얼마나 바빠요? 하루가 바쁘다고 재촉하는 그런 판국에서 내 사진을 보고 나서는 이 양반이 아니면 결혼 안 하겠다고 한 거예요. 왜? 영계에서 그렇게 보여 줬다구요. 그런 역사가 있다구요. 그런 얘기를 하려면 한이 없어요. 결혼을 그렇게 한 것도 기록적입니다.

그래 가지고 1년 반씩이나 기다렸어요. 그러다가 내가 돌아오니까 그 이모가 와 가지고 '네가 왔구만.' 하면서 이 여자가 이렇게 되었다고 얘기하는데 남자의 체면에 여자를 그렇게 내보낼 수 없잖아요? 내가 그 때 어디로 가려고 했느냐 하면, 만전(만주전업)에 취직해 가지고 지금 하이라얼(海拉爾)이라는 소련과 만주와 몽고의 삼각지대인데 거기에 내가 발령을 받았어요. 왜? 소련말을 배워야 되고, 중국말을 배워야 되고, 몽고말을 배워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이래 가지고 만전에 취직해 가지고 부임하기 위한 도상에서 고향에 들른 거예요. 그 여자가 그렇게 기다렸는데 남자 녀석이 여자한테 빚을 져서야 되겠느냐고 하는 거예요. 사실 그래요. 그래, '당장에 갑시다!' 해서 70리 길을 집에 오자마자 밤에 걸어서 가는 거예요.

그때 기차는 역마다 쉰다구요. 서울역에서 열두 역이라구요. 그것이 하룻밤 종일 칙칙폭폭 하고 온 거라구요. 역에서 20리 길을 걸어와 가지고 돌아왔어요. 그렇게 오다 보니까 저녁때가 됐어요. 저녁밥을 먹고 나니까 이모 되는 사람이 와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럴 수 없소. 당장에 갑시다.' 한 거예요. 내가 바쁜 길을 가고 있는 참이거든요. 취직해 자기고 부임해 가는 노정에 계산을 다 뽑아 가지고 집사람까지 데려갈 수 있는 것까지 생각해 가지고 떠나는데, 그걸 흐지부지할 수 없다 이거예요. 당장에 가자고 해서 70리 길을 걸어간 거예요.

그때 신작로 길이 자갈을 가득히 묻어 놓은 길이라구요. 그런 것 알겠구만. 구두를 신고 나섰더니 발모가지가 부러지겠어요. 이거 한 발짝 비틀 하게 되면 야단이고 말이에요. 이모와 어머니를 붙들고 그렇게 70리 길을 밤 새워 갔다구요. 가다 보니 발목이 얼마나 서기가 거북해요? 가니까 새벽이 됐어요, 새벽. 새벽 서너 시쯤 돼서 갔어요.

선 보러 가는 사람이 말이에요, 색시네 집에 새벽에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에 등이 있더라구요. 등이 있다구요. 성진이 어머니 본가집 교회가 고개 너머에 보이고, 이쪽으로 고개를 넘어가게 되면 큰 최씨네 마을이 나오는 거예요. 그 넘어가는 입구에 주막집이 있더라구요. 마을 입구에 주막집이 있잖아요? 주막집이 있어서 들어간 거예요. 밤새껏 걸어왔으니 배도 고프고 잠도 오고 그러니까 선 볼 수 있는 입장도 안 되지요. 주막에 들어가 가지고 먹을 것을 먹는 거예요. 먹는 것도 갖다 주는 것을 다 먹었어요. (웃음)

거기서 밥을 먹고 나니까 날이 밝아 오거든. 그러니 사람을 보내 가지고 선 보러 왔다고 연락한 거예요. 그러니 그 집이 큰일났지요. 모셔들여 와야 되는데 한 시간, 두 시간 가지고 되겠어요? 그러다 보니 아침에 해가 뜨도록 전부 다 해 가지고 오라고 해서 찾아가는 거예요.

찾아 들어가니 아침밥을 다 해놓았는데 아침밥이 뭐예요? 자지 못했으니 자야 되겠다고 용서하라고 하고는 방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웃방을 내주고 맏처남댁이 시집올 때에 해 와서 장롱에 집어넣고 쓰지도 않던 양단 이불을 깔아 주더라구요. 이놈을 깔아 놓은 데를 들어갔는데 습기가 얼마나 나오는지 말이에요. (웃음) 그게 잊혀지지 않아요. 습기가 들어 있는데 습기건 무엇이건 자는데 알 게 뭐예요? 자다 보니 열두 시가 되고 한 시, 두 시까지 들입다 자는 거라구요. 코를 골고 말입니다.

이거 선 보러 왔던 신랑이 집을 독차지해 가지고 코를 들입다 골면서 자는 거예요. 오죽 피곤했으면 코를 골았겠어요? 얼마나 요란했겠어요? 동네방네 소문 다 났다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신랑은 코고는 소리를 들어 보니 건강하구만.' 그래 가지고 별의별 수수께끼 말이 다 돈다고 말이에요.

이래 가지고 두 시 반이 지났어요. 아침 먹고 점심 먹을 시간을 다 지냈다 이겁니다. 아침을 해놓은 것을 다 치우고 또 때가 되니 점심밥을 했는데 다시 저녁을 해야 할 판입니다. 이렇게 됐으니 어머니가 위신이 서요, 어머니가? 이거 사돈집에 가 가지고, 유명한 가문의 대표적 가정에 찾아가 가지고 그런 행세를 하고 있으니 꼴이 뭐예요? 죽지 못 해서 야단이지.

그래, 할 수 없이 어머니가 들어와 가지고 내 발을 들이 꼬집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 왔으면 고단하더라도 색시 선이라도 보고 자야 할 텐데 그것도 못 하고 있다.'고 말이에요. 선을 보고 나서는 좋다 나쁘다 말하기 전에는 자도 괜찮거든. 세상에 선을 보지도 않고 자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거예요. 이러니까 할 수 없이 왜 이러냐고 하면서 일어난 거예요.

부엌에서는 점심밥을 다 차려 놓고 들여오려고 하고 있는 판이라구요. 세수도 안 하고 이빨도 안 닦고 이래 가지고 세 시가 넘어서 밥을 먹기 시작한 거예요. 밥이 들어오니까 체면이 어디 있어요? 하나, 둘, 셋, 넷, 굿바이 다 해 버렸지요. (웃음) 이러니까 밥을 더 주겠다고 해서 '아닙니다. 초면에 밥을 더 주면 여기서 앉지 못하고 내가 도망을 가야 됩니다.' 이랬다구요. 그럴 때는 농담을 해야 된다구요, 슥. 그래 가지고….

이거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어? (웃음)「재미납니다.」재미나는데 문제가 크다구요. 다 하면 여러분이 걸려들어 간다구요. 요만큼 하고 말지 뭐.「조금 더 하시지요.」조금 더 해서 결론지으면 걸려들어 가도 괜찮아요? (웃음) 그랬으니, 영적으로 그러한 여러 가지 계시를 다 받았는데, 이게 틀어지면 천하에 큰일이다 이겁니다. 정신대 가야 됩니다, 정신대. 그러니 얼마나 간절하겠어요? 그래, 밥 먹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색시를 언제 불러들여서 면회하겠다는 답변이 나올까?' 이런 거예요. 그것 다 알지. 알지만 저녁밥 먹을 때까지 아무 말 안 했어요.

처남댁과 주위 사람들에게 슬슬 물어 보고, 동네의 누가 찾아오면 인사도 하고 그런 거예요. 사람을 다루려면 내가 못 다룰 능력이 없거든. 슬슬 비위를 맞추고 이래 놓고는, 말하면 한 시간, 두 시간 후에 잔치하겠다고 닭 한 마리라도 가져오게 돼 있어요. 그렇게 다 만들어 놨어요. 갈 때 그냥 가면 욕먹는다구요. 거기에 왔던 친척들이 신랑감이 와서 잠자고 이랬으니까, 결혼이야 되든 안 되든 동네 전체가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결혼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촌 오빠로부터 오촌 당숙으로부터 다 모여 와 가지고 방에 앉아서 자기들 멋대로 어떻고 어떻고 하더라구요. 훌륭한 대학을 나오고 그런 사람들이 많다구요. 외국 유학한 사람도 있고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시험을 할 수 있느냐고 별의별 짓 다 하더라구요.

그러고 나서 저녁때에는 한 방에서 밥을 다 먹을 수 없으니까 몇몇 사람을 남겨 놓고 밥을 먹고 나니까 소문이 '야! 아무개 최씨 훌륭한 신랑 맞게 됐다.' 하고 났다구요. 내가 약속도 안 했는데 그런 소문이 내 귀에 돌아 들어오더라구요.

이래서 가기 전에 그랬어요. '오늘 닭 한 마리쯤은 새신랑을 맞으려면 준비할 수 있지요?' 하니까 있다고 하더라구요. 약속을 딱 하고, 저녁을 먹고는 면회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색시부터 안 부르고 장모부터 부른 거예요. 딸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뭐냐고 물어 보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딸에 대해 자랑할 게 뭐냐 이겁니다. 솔직히 말해 달라고 말이에요.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인데 그런 사람의 아내가 되어 가지고 뒤처리해 줄 수 있는 당당한 딸인가 아닌가 물어 보는 거예요. 신앙은 어느 기준까지 되어 있고 말이에요.

그래, 재건파도 이들을 못 따라가는 거예요. 재건파, 재건교회 기반이 평양서부터 됐지만, 이 사람이 주동적 역할을 한 거라구요. 신앙에도 상당한 거예요. 감옥생활까지 했어요, 그 어머니로부터 세 딸이. 그 주모자가 성진이 어머니더라구요.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졌습니다. 축자영감설을 말합니다. 성경에 일점 일획도 더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나보고 면회재판 모양으로 '선생님은 성경에 대해서 일점 일획이라도 가감치 않고 믿습니까?' 묻는 거예요. 내가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나는 그것을 다 이루고도 남습니다.' 답변이 그거예요. 나는 그것 다 이루고도 남은 길을 왔다 이거예요. 그 말이 뭐냐 하면, 재림주라 그 말입니다. (웃음)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길래, 당신이 믿는 신앙의 모든 고갯길, 그것이 영계와 지상에 어떻게 관계되었다는 것을 다 알고, 나를 따라가면 당신이 가는 길 앞에 행복한 길이 있지 불행은 절대 없다고 한 거예요. 어떻게 그것을 믿겠어요? 다 얘기한 거예요.

이래 놓고 내 갈 길은 이제부터 약혼하면 7년 동안은 나눠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해와의 역사가 그렇잖아요? 7천년 역사입니다. 6년 이상은 갈라져 살아야 된다 이겁니다. 그때 그 남편이라는 사람은 편지 한 장 못 보낸다 이거예요. 모진 싸움의 전쟁터에서 죽느냐 사느냐, 사생결단을 해야 할 판가리 싸움이 앞에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가야 된다 이거예요. 다 얘기했다구요. 그래도 괜찮으냐고 물었어요.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이 신랑을 놓칠까 봐, 지금 하늘이 바늘구멍같이 보이는 판국인데 안 하겠다고 하게 돼 있어요?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정말이냐고 하니까 정말이라고 하면서 틀림없이 자기는 그렇게 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6년 동안 갈라져 사는 거예요. 그 말 그대로 산 거예요. 편지 한 장 안 하고 어디 간다는 얘기도 안 하고, 보따리 싸 가지고 남한에서 북한으로 간 거예요. 남북한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북한에 들어가 가지고 공산당을 처리해야 할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런 놀음을 할 것을 예상한 거라구요.

그러니까 동네방네가 '사윗감 넘버 원이다!' 하고 소문이 다 났다구요. 그 다음에 오빠도 그렇고, 만난 사람은 다 좋다고 하고, 어머니도 그렇고, 본인도 나쁘다고 하지 않으니까. 나빠도 나쁘다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지. 꿈같은 사실이 자기에게 부딪치니 손 들고 발 들라면 네 발 들고도 무슨 짓을 하라고 해도 다 하게 되어 있지요. 그래 가지고 면회한 시간 저녁 일곱 시가 넘었어요. 그때가 겨울이라구요. 그래 가지고는 또 할 수 없이 자는 거예요. 거기서 차를 타려면 10리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데 차가 없다구요, 밤에 가는 기차가. 그러니 틀림없이 안 잘 수 없어요. 선 보러 가서 색시네 집에서 자야 된다 이겁니다. 안방에서 자야 되게 생겼다구요. 자면 자는 거지 뭐. (웃음) 그런 비위도 없어 가지고 어떻게 복귀섭리를 기틀을 잡아요?

그래, 차 시간을 알아보니까 차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관에 가서 자겠다고 했어요. 10리 나가면 곽산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여관방에서 자겠다고 한 거예요. 약혼을 할지 말지 한데 어떻게 이 집에서 자겠느냐고, 할아버지의 손자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의 승낙도 얻고, 부모 앞에 의논해 가지고 좋다고 해야 결정할 수 있지, 나 혼자 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결혼은 할지 말지 한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이 집에서 자느냐, 체면이 없지 않느냐고 한 거예요. 그랬더니 그건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 당신네들 오늘 사돈의 8촌까지 전부 다 모여 가지고 자라고 했다는 이런 소문을 낼 수 있느냐?' 그러니까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이 집이 대가집인데 그저 연락만 하면 뛰쳐오게 돼 있다구요. 한 장군을 데려오더라구요. 삼촌인지 몇 촌인지 나이 많은 팔십 노인네부터 20대까지 한 50명이 쫘악 모였어요. 그 사람들이 신랑이 그렇게 처음이라서 못 자겠다면 우리 집에라도 데려가 재우겠다고 하는 거예요. 여기서 자는 것이 불편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절대 결혼은 생각지 말라는 거예요. 다 그렇게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결혼은 안 해도 된다고 했지요? 만약 결혼한다면 당신들 축하하겠소, 안 하겠소?' 하니까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더라구요.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거예요. 소를 잡으라고 하면 소를 잡고, 돼지를 잡으라고 하면 돼지를 잡는다 그 말이라구요. 동네 잔치를 하라 하면 하게 돼 있다 이거예요. 진짜 무엇이든 하겠다고 한 거예요. '결혼 안 해도 하겠소?' 하니까 '결혼 안 하더라도 귀한 손님으로서 알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최대한도로 하겠소.' 하더라구요. 그렇게 약속했다구요.

그래 놓고는 사랑방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고 성진이 어머니를 들어오라고 해서 재차 심문하는 거예요, 심문. 어머니하고 그 다음에 가족들 모아 가지고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괜찮으냐고, 반대하기 쉬울 텐데 어떠냐고 하니까 '반대를 어떻게 하겠느냐?' 한 거예요. 전부 다 약속을 받았어요. 만사 오케이 할 수 있는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도 다 계시지만 제가 지금 30세 가까운 이런 남자로서 외국을 출입해 다니는 입장에 있기 결혼에 대해서 자유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이미 허락 받았으니 오늘 저녁에 80퍼센트만 약혼 가능성을 선언합니다.' 하니까 박수로 환영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