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 기준이 문제
『절대적인 창조주로부터 지음받은 만물에게는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창조주와 더불어 하나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서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중간 생략>
그 기반 밑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된 남성과 여성이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그러한 기원에서 하나된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인류의 대행복, 전세계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소원의 심정과 일치되어 연결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참는 것은 평화의 그 자리를 남기는 것이요, 위하는 것은 넘어가는 거예요. 사탄은 그것을 못 해요. 사탄은 그것을 못 한다는 거예요. 그게 제일 중요한 거라구요. 이게 근본 문제예요. 근본 문제예요. 사랑도 그래요. 사랑한다는 것이 누구를 위하는 거예요? 크게 보면 우주를 위한 것이요, 자기 나라를 대표한 것이요, 자기 일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하고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마음 기준이 문제예요. 사랑 받는 것이 마음 기준이냐, 사랑을 하는 것이 마음 기준이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사랑이라는 것이 수동적인 동기를 갖고 있느냐, 출발적인 동기를 갖고 있느냐 이거예요. 출발이에요.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기준을 중심삼고 자기를 위하고 받고자 원하고 자기를 세우고자 하는 데는 참사랑이 있을 수 없어요. 상대가 나타나면 자기가 정지해 가지고…. 여러분이 거북이를 알지요? 거북이를 보면 사자도 건드리다가 후퇴해 버리고, 뱀도 건드리다가 후퇴해 버리고, 전부 다 그렇더라구요. 이야, 아무것도 없어요. 눈도 코도 다 없어진다구요. 그러니까 있는 것이 없으니 가질 것이 없다 이거예요. 암만해도 자기가 손해니까 물러가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그것이 지나간 다음에는 어디든지…. 놀라서 숨었다고 해서 도망 안 가요. 지나가도 여전히 그래요. 내가 거북이하고 토끼를 보면서 ‘이야, 저렇게 차이 있구만!’ 했어요.
문제는 그래요. 부처끼리 싸우게 될 때 ‘누구 누구가 무슨 말을 했느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얘기하지요? 심판 자리에 서지 말라는 거예요. 거기에 감명을 받고 나는 나대로…. 금 앞에 먹물을 뿌린다고 먹이 될 수 없다 이거예요. 금은 금이에요. 잠깐 그 자체가 가려졌을 뿐이지 흡수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이 제켜지는 날에는 자체보다 더 발전하는 거예요. 제일 문제가 나예요. 내가 문제라는 거예요.
남자 앞에 여자가 최고의 괴물이고, 여자 앞에 최고의 괴물이 남자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 선에 서는 거예요. 수평 기준에서 보게 될 때 누가 먼저 사랑을 받고자 원하느냐, 하고자 원하느냐? 그러면 받기를 영원히 받을 거예요? 그건 없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주면 영원히 주라는 거예요. 영원히 주게 되면 영원히 회전할 수 있다구요.
동(動)과 지(止)를 두고 볼 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주겠다는 데서 계속하지, 영원히 주겠다는 데서 계속하지, 영원히 받겠다는 데서는 계속이 안 되는 거예요. 우주의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런 사실을 알고 생활해야 돼요.
문제는 나예요. 내가 문제예요. 여기에 통일이라는 말은 뭐냐? 이 ‘통’이 ‘거느릴 통(統)’ 자예요. 실(?)에 완전하다는 ‘충(充)’ 자 아니에요? 완전히 동여매는 거예요, 실타래로. 한 가닥 실이 아니에요. 우주의 실타래로 동여매는 거예요. 거기에 하나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마음 자리가 그래야 돼요. 세상에 무엇이 나를 밀친다 하더라도 내 이 자리를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라는 거예요. 거기에 3대 요건이 들어가는 거예요. 먹는 것, 먹는 것이 문제예요. 그 다음에 자는 것이 문제고, 사랑이 문제예요. 이게 3대 원수예요.
먹는 것이 문제지요? 어디 가면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하지요? 그렇지요? 잠도 더 자고 싶다구요. 그 다음에는 사랑문제예요. 이게 다 괴물이에요. 그러니까 참고 자기 현재의 위치를 침범 당하지 않아야 돼요. 그 다음에 외부의 닥치는 핍박이라든가 감옥에 들어가면 고문이라든가 이런 문제는 자기가 결정한 것을 딱 중심삼고 약속했으면 약속한 그 자리를 가려가야 돼요.
약속이라는 것은, 또 선서라는 것은 악을 중심삼고 하는 법이 없어요. 전체가 좋기 위한 것 아니에요? 결단이니 무슨 뭐 선언이라는 것이 전체가 좋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나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법이 나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대로 가야 되는 거예요. 왔다갔다하면 벌써 그건 깨지는 거라구요. 그마만큼 지체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딱 자리를 잡았으면 누가 뭐라 하든 그 자리를 갖고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사랑이에요. 무슨 사랑? 종적인 기준을 살릴 수 있는 사랑, 횡적인 기준을 살릴 수 있는 사랑! 그게 참사랑이에요. 참사랑은 뭐냐 하면, 종적인 것은 횡적인 것을 위해 있고, 횡적인 것은 종적인 것을 위해 있다는 거예요. 위해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받기 위한 것이 아니고 위해 주기 위한 거예요. 모든 우주의 근본이 그래요. 출발이라는 것은 위하는 데서 시작했지, 받는 데서는 출발할 수 없다는 거예요.
혁명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현재 입장을 넘어서 가지고 줄 수 있기 때문에 혁명이 필요한 거예요.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이 세계를 하나 만들겠다고 했지만, 세계를 위해 줄 수 없어요. 이 세계는 무한을 향해서, 이상경을 향하고 가기 때문에 그걸 줄 수 있는 이론이 정착 안 되었어요. 거기에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없어요.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은 인간세계에는 없어요. 신만이 그렇다 할 때 신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기점으로 삼고, 과정도 그 신에 의한 과정, 결과도 신에 대한 결과에 가서 안착해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