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조부에 대한 기억과 오산고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493권 PDF전문보기

종조부에 대한 기억과 오산고보

우리 할아버지가 그럴 수 있어요. 영어 잘하지, 그다음에 한문에 능 통하지. 그렇기 때문에 함경남북도 동해안 지역으로 피난 갔는데, 나라 에 쫓겨 가지고 요주의 인물로 지낼 때 30여년 동안 저 함경북도로부 169 터 동쪽 나라…. 동쪽 나라가 산악지역이고 바다에 가까우니까 누가 찾아오나? 그래 가지고 부산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붓 장사를 했어 요. 서당에가서붓만든것을지고다니면서글방에가가지고, 다친 구니까…. 잘났다는 사람들도 영어 하고 목사 하던 한문학자가 있나? 이러니까 높이 존경받고 다 그랬던 거예요. 재미있는 것이, 김형태네 동네가 우리 할아버지가 중간에 오르락내 리락하며 쉬던 곳이었더라구요, 가만 보니까. 삼척 그 지방이에요. 김 형태도 우리 종조부 할아버지 얼굴도 잘생기고 아주 건강했더라고 말 하더라구요.「아주 풍채가 좋아서 김형태 회장 모친이 항상 보고 참 아주 귀골이 장대하게 생겼다고 합니다.」그래, 혼자 오게 되면 밥도 해 주고 점심도 해 주고 모시고는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김형태네 일족이 다 통일교회 들어와 가지고 출세했어. 「최근에 오산고보에 관한 여러 서적들 나온 데 보니까 ‘윤’자 ‘국’ 자 할아버지께서 오산고보를 창설할 때 30원을 기증하셨다고 그래요. 그때 돈으로 30원이면 얼마나 많은 돈입니까?」 거기에 이승훈 씨가 장로였다구요. 조상으로 모시고 그랬던 거지. 그런 기본금을 우리 할아버지가 댄 셈이지. 그래서 내가 안다고 하지 않고 오산고보를 다니면서 모르는 것처럼…. 친구들은 손자 되는 줄 몰랐지. 선생도 몰랐다구요. 말없이 있다가 에라, 공부나 하자고…. 거기에서는 일본 말을 못 하게 하거든. 일본 말을 모르면 어떻게 되 나? 일본을 뒤집어 버려야 할 텐데. 그래서 남들 졸업할 때까지 완전 히 패스예요. 중학교 책까지도 내가 사 가지고 마음대로 독파할 수 있 는 실력을 가졌기 때문에 소학교 졸업할 때 강단에 나서 가지고 들이 죄기고 다 그런 거거든. 우리 종조 할아버지가 일본 말에 영어까지도 하니 영어 책을 그때도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공부했는데 영어를 가르쳐 주나, 어디?「그 시 절에 어떻게 영어를 배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선교사들한테 배운 모 170 양이시지요?」응?「그 시절에 그렇게 영어를 배우셨으면 대단히 일찍 배우신 건데.」할아버지가 그러니까 선교사하고 친구들 아니야? 다른 것은 못 해도, 일본 말도 해야 하지만 이거 모르면 큰일난다고 영어를 가지고 다니면서 했는데, 시간이 있어야 공부하지. 농사 판에 가서 모 내기대회, 산에도토리주우러다니고, 안해본게어디있어? 별의 별 일을 다 하고 다닌 거라구요. 그렇지만 고마운 것은, 내가 자연을 사랑하면서 자연 가운데서 많이 배웠지. 선생도 물어보면 답변 못 하니 나한테 다…. 세상에 쌍쌍제도 로 돼 있는 것을 선생님이고 뭐고 누가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로 부터 시작한 거예요, 쌍쌍제도라는 말. 임자네는 그거 있는 말인 줄 알 지?「예.」 ‘위하여 살자. ’‘위하자 ’라는 말이 나로부터 시작했는데, 건배 하면서 ‘위하여! ’하고, 축배하는 데도 ‘위하여! ’말들은많이 해요. 그 전통은 선생님부터 시작했어요. 그거 삼십 얼마야?「30원이요.」30원이면 그때 돈으로 얼마인 줄 알아?「모르겠습니다만, 학교 교사 명단에는 없고요.」없지.「그때 목 회를 하셔서 그런지….」목회보다도 코치를 했지.「교사 명단에는 없 고, 기증하신 분 명단에 나와 있습니다.」오산고보에 그랬기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가 정주 교회 목사였는데, 정주 교회 신도가 학교에서 3백여명이불타죽었어요. 여기미국에와있는조선일보같은건거 지 패들이에요. 방 무슨 손자들, 방씨네 후손들은 우리 종살이나 하던 패들인데, 이놈의 자식이 통일교회 없애겠다고…. 요즘에는 정신차렸 지? 왜정 때에 우리 가문을 중심삼고 들고 나가 자랑할 때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아예 그런 말도 안 했지. 왜정 때 요주의 인물로 딱지 붙게 된 정주보통학교 졸업식 사건 내가 시골에 족제비 사냥을 다니면서 한 면을 밤새 80리, 100리, 171 120리 길을 뛰어 다니고 하면서도 어디 가 가지고 배고프면 김치…. 평안도는 말이에요, 김치 하는 데는 말이지, 집같이 지어 놔 가지고, 나무를 싸매는 볏짚으로 바람이 들어가지 않고 따뜻하게 잘 해 놓는 거예요. 거기 들어가 가지고, 추우면 거기 좁은 데 몇 녀석이 들어가서 몸뚱이 대고 그다음에는 담요 같은 것으로 이렇게 하면 따스해 오는 거예요. 그거 녹이고 해서 녹았으면, 한 시간, 두 시간 엎드려서 서로 의지하고 앉아서 한 30분, 한 시간 자고 나서는 돌아가려면 배고파서 못 돌아간다구요. 아침에해떠올라온다음에누가아침을주게돼있나? 그래서거 기 있는 무, 배추를 꺼내 먹던 생각이 나요. 손은 얼었는데 불어 가면 서 무하고 배추를 먹었다구요. 배가 고프면 안 되거든. 가서 앉으면, 수분 결수(탈수)가 돼 가지고 앉으면 못 일어서면 얼어죽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잠이들것 같으면내가배추도 먹고무도 먹는데,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아버님하고 국민학교(초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사람, 아버님보다 네 살 아래 있는 사람인데, 키가 작달만하니 인천에 사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때 얘기하는 걸 들어 보니까 느닷없이 월반해 가지고 쑥쑥 올라오시더니 졸업장을…. 그때는 아마 일제시대였으니까 졸업식을 하 면 그냥 학생들은 물론이요, 선생들은 물론이요, 경찰까지 싹 와서 지 키고 있고 내빈들이 와서 쫙 앉아 있는데, 프로그램에도 없는데 갑자 기 학생 한 사람이 후닥닥 뛰어 올라가더래요. 자기는 나이가 아버님 보다 어리고 그러니까, 같은 졸업생이기는 했지만 같은….」 급이 아니지. 나는 선생님하고 친구인데. 「같은 끼리끼리 끼지 못했대요. 그래서 자기는 항상 요렇게 뒤에서 멀리 보고 그런 입장이었는데, 후닥닥 올라가시더니 그냥 열변을 토하 시는데, 우선 선생들을 사정없이 들이 까더래요. 뭐라고 말은 정확히 기억 못 하는데 그러더라고 그래요. 선생들을 까고, 일본 경찰들이 감 172 시하고 학교를 감독하는 요런 것도 빗대어 가지고 한바탕 해대시고, 아주 그냥 발칵 뒤집혔대요. 그때부터 모르긴 해도 아버님이 아마 일 본 경찰들의 감시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그런 말을 했습니다. (김효율)」 요주의 인물로 어디 가든지 딱지가 따라다녔지.「얼마나 실감나게 얘기를 하는지, 그 사람이 말이에요.」내가 거짓말했다고 생각했겠구 만.「아닙니다. 아버님께도 그런 얘기를 들었지만, 그 사람한테 직접 그런 간증을 들으니까 아주 실감이 나던데요.」(웃음) 실감나는 얘기 지 노는 얘기가 아니야.「예.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왜 그랬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니까 자기들도 전혀 예측을 못 했대요.」 그래서 도항증을 떼려고 경찰서 서장하고 싸우던 얘기, 그런 걸 누 가 알아? 그래 가지고 싸우면서 지금까지 나왔는데 이제는 싸움이 끝 났어요. 이제는 누가 감히 입을 열어서 선생님을 상대하겠다는 사람은 없잖아요? 허문도도 선생님을 15분이라도 만나게 해 달라고 그랬는 데…. (웃음) 그 사람들 3수(스리 허), 허문도, 허화평, 허삼수! 전두 환이 그래도 두환이는 두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