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의 할 일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참부모

5) 우리의 할 일

① 우리의 책임

복귀의 길을 가는 여러분은 개개인이지만 여러분 개인만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언제나 복귀의 길을 가는 여러분은 참부모를 대신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종족적, 민족적, 혹은 국가적인 참부모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르게 참부모를 대신해서 가기 위해서는, 참부모는 세계적인 영적 승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간다면 여러분은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가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다른 면에서 설명하면, 여러분이 민족적인 기준을 넘어서 세계적인 기준을 향하여 간다면 오시는 참부모는 영적으로 천주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주님은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영적으로 개척하고, 실체적으로 승리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 복귀의 어려움입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과 인간을 돌아보게 될 때, 하늘이 어느 한때 승리의 참부모를 모셨느냐?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땅이 모셨느냐?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모셨느냐? 아직까지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 도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만 모시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참부모를 모신 다음에는 참된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을 위해 준비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참부모 앞에 참자녀로 서기 위해서는 자녀의 개인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가정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종족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민족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이요, 자녀의 국가적인 복귀노정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적인 복귀노정과 자녀의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적인 복귀노정을 완결하여, 부모와 자녀가 일체 되어 승리했다는 기준을 세워 놓고서야 비로소 민족복귀를 종결짓고 세계적인 무대를 향해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13-288, 1964.4.12)

그러면 통일교회의 사명은 무엇이며, 여기에 입교한 여러분은 어떤 입장에 있느냐? 선생님을 중심한 이 통일교회에 불려온 여러분은 서러운 6천 년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실체적으로 전개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결심을 해야 할 것이냐? 우리가 가야 할 목표는 어디냐? 세계적인 기반 위에 참부모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참부모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아직까지 슬픔과 고통과 눈물이 남아 있는데, 이것들을 우리가 하루 빨리 청산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맡고 있는 책임이요,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가야 할 길을 나섰으니,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향해 나가던 때와 마찬가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도 그래야 하고, 몸으로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13-291, 1964.4.12)

우리가 품어야 할 소망이 무엇이냐?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에 오시는 참부모님을 진정으로 모시는 것을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모시는 데는 승리의 터전이 이루어진 후에, 만민이 우러러보고 만민이 공경하게 된 자리에서 모시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거치시는 참부모를 모시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픈 역사를 거쳐온 참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선조들은 한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진정으로 모시는 것을 모든 인류가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자리에서 모시려고 하기보다 비참한 자리에서 모시는 참효자 참효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참효자 참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자리, 낙망할 수 있는 자리, 비참하여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자리에 서더라도 `하늘이여, 나를 인도하시는 하늘이여, 참부모님은 예수님보다도 더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시니, 부모를 모시는 나로서는 어떤 가중된 십자가를 지게 되더라도 당연합니다.

나는 그것을 찬양하오니 하늘은 나로 말미암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미쳐지는 근심과 고통과 슬픔을 하늘 앞에 짊어지우지 말고 스스로 탕감하고 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개인적인 기준에서 개인적인 부모의 승리의 인연에 접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축복가정들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려 있습니다.

왜 축복가정들을 삼천리 방방곡곡에 널려 놓았느냐? (13-291, 1964.4.12) 하늘은 삼천만 민족과 삼천리 반도를 중심삼고 섭리하시고, 참부모는 이 삼천만 민족 삼천리 반도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시는 참부모님을 삼천리 반도가, 모든 마을 마을이, 골짝 골짝이, 산과 들은 물론이요 전부가 모시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부모를 모시는 것이 역사적인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탕감기준을 세우고 가정적인 탕감기준을 세워 참부모의 대신자로서, 그 마을이 후회 없이 모시고 싶어할 수 있는 참부모의 실체 대신자가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신 참부모는 물론 중심의 자리에 계셔서 영적으로 전부와 관계를 맺으시지만 실체는 하나이시기에 전체를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의 실체를 대신하여 만민을 대하는 입장에 세워진 것이 축복가정들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에게는 이 민족을 넘어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족적인 십자가는 지방에 널려 있는, 참자녀의 입장에 있는 축복가정들이 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 전체가 하나의 종족적인 발판, 민족적인 발판이 되어야만 하늘의 역사는 이 민족을 중심삼고 승리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288, 1964.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