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일체 된 생활을 해야 한다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예절과 의식

② 일체 된 생활을 해야 한다

모든 종교에서는 보는 것을 함부로 보지 말고, 듣는 것을 함부로 듣지 말고, 말하는 것이나 대하는 것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야지, 자기 중심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66-231, 1973.5.13)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신 자로서 기쁠 때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게 해드렸습니까? 여러분이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서 느끼는 고마움 이상 하나님을 모셔드렸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것을 먹을 때나 입을 때, 그리고 슬플 때나 어려울 때에도 항상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사연들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17-291, 1967.2.15)

나의 의식과 직관과 감각기관 일체까지도 아버지의 것이요, 내가 느끼고 의식하는 전체가 아버지의 것이라는 관(觀)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심정을 통해 움직이는 하늘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8-295, 1960.2.14)

인간은 누구라도 심정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자식 된 인간은 바로 심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축복가정과 이상천국Ⅰ-469)

우리가 말을 하고, 보고, 느끼고, 또 감정적으로 체감(體感)하는 일체(一切)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연된 것이어야 합니다. (53-239, 1972.2.29)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겁니다. 말을 해도 그렇고, 행동을 해도 그렇고, 자나 깨나 모시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런 컨셉(concept:개념)만 가지면 24시간 사탄이 침범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161-232, 1987.2.15)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첫마디 말을 하늘 앞에 바치고, 집을 나설 때도 첫걸음을 오른발로 내디디며, 하늘 앞에 바쳐야 합니다. 평소의 습관이 이렇게 된다면, 여러분의 생활은 시의생활(侍義生活)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원칙적인 기준에서 생활태도를 취해 나가야 합니다. (17-296, 1967.2.15)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느끼는 모든 감각, 동작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언제나 직선상에 귀일(歸一)될 수 있어야 됩니다. 그점을 상실하게 되면 뜻과 나와는 관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57-233, 1972.6.4)

천국은 모시는 생활을 한 것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그 천국은 어떠한 자가 가는 곳인가? 주를 믿고 복을 받기 위해 복을 앞세워 나가는 자가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모시기 위해 심정적으로 준비하는 생활을 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준비하는 기간에 죽는다 해도 모심의 생활을 남기고 기쁘게 갈 수 있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 거기에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8-304, 1960.2.14)

이제는 삼합(三合:하나님, 참부모, 여러분)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보조를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달려 있기에, 삼자가 일치되는 점에서 하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점에 생명의 부활권이 있습니다. 그점이 하나 되고 참부모와 여러분이 하나 되어 일치될 수 있는 연결점입니다. 거기서 일심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뜻과 일치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31-321, 1970.6.7)

하루 24시간의 생활권 내에서 내가 보고 듣고 했던 모든 일들은 무엇을 위해 보고 들은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보고 들어야 되고 느끼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천상세계의 생활과 연결시켜 생활해야 합니다. (35-284, 1970.10.25)

매일같이 그리워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그리워하든 항상 그리움에 사무쳐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밤 12시만 되면 `야야! 자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밤과 낮이 없습니다. 심정의 인연을 안고 나올 때는 밤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7-293, 1967.2.15)

본래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 된 후에는 나 중심삼고 살고, 나 중심삼고 생각하고, 나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해도,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생각이 되고 하나님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원칙이라는 겁니다. (92-166, 1977.4.3)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과 인연 맺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들였느냐 하는 것이 자신의 재산입니다. (50-290, 1971.11.8)

여러분들은 눈물의 골짜기에서 아버지를 부를 때 응답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눈물짓는 자리에서 `아버지!` 할 때 `오냐. 내가 여기 있으니 참아라.` 피땀 흘리는 고통이 사무치는 자리에서 `아버지여!` 할 때 `내가 참았으니 너도 참아라.` 하시고, 죽음이 닥쳐오는 그 순간에도 `내가 있으니 안심해라.`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돼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얼마나 아버지를 모셨으며, 얼마나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했으며, 얼마나 아버지와 더불어 살았느냐 하는 게 문제가 되지, 영광의 자리에서는 아버지를 아무리 불러봐야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아버지께서 영광의 날을 보시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1-102, 1961.2.12)

`아이고, 나 배고파! 아이고, 밥 밥 밥!` 이러는데 그거 누구를 위해서 먹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 먹겠다고 그래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위해 먹는 것이라 하느냐? 내가 하나님의 완전한 성전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성전인 `내가 배고프면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밥을 먹자고 하신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면 그 밥은 거룩한 밥이라는 겁니다. 밥이 밥님이 되는 겁니다. (92-166, 197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