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효자의 길 - [8대교재교본] 천성경 예절과 의식

② 효자의 길

선생님은 배가 고파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염려하는 그 길을 내가 앞놓아 갈 것이냐, 짊어질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면 어떻게 그 길을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러한 길을 가려고 준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모심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13-233, 1964.3.22)

선생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면 밤잠이 안 와서 한밤중에라도 뛰어와서 물어보고 갈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심으로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에 대해 언제나 그렇게 삽니다. 촌분(寸分)도 방심하지 못합니다. (21-71, 1968.9.9)

여러분은 시의시대, 즉 모심의 생활을 하는 시대에 있어서 정확한 중심을 두고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데에는 법도가 있습니다. 그 법도를 어길 때에는 하나님은 무척 노여워하십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의 말 한마디에 가슴에 못이 박혔다 빠졌다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노여움이 많으신 분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생님도 선생님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17-287, 1967.2.15)

여러분도 여러분을 생각해 주는 사람을 찾아가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는 길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 봉헌하겠다고 하는 그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찾아가는 겁니다. (128-172, 1983.6.12)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솜바지저고리가 다 젖도록 기도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고, 칼을 가지고 뱃가죽을 찌르며 맹세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마음을 굳게 다짐한 적이 몇천만 번인지 모릅니다. (19-19, 1967.11.5)

인간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인데, 사랑하는 데는 죽도록 사랑해야 됩니까, 일시적으로 사랑해야 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할래요, 죽도록 사랑하지 않을래요? 벼락을 맞아 죽더라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도록 사랑해야 된다면 죽기 전까지는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37-25, 1970.12.22)

여러분은 눈이 뭉그러지고 코가 메이도록 울면서 그리워해야 합니다. 사람이 너무 울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만큼 사무치게 그리워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고 부르는 데 있어 사형장에 끌려가는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다른 먼 나라로 떠나는 아들의 입장에서 애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 그런 기준 이상이 되어야 됩니다. (50-289, 1971.11.8)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에 반석을 갈아 밭을 일궈가지고 감자를 심어 그 감자로 하나님을 봉양할 수 있어요? 그거 해야 합니다. 그때는 소가 없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소 삼아 밭을 일구었다면 벼락을 맞겠어요, 안 맞겠어요? 아내를 소 삼아서 밭을 일군다 할 때 하나님이 `야야! 그만둬라!` 한다면 하겠어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정성을 다하라!` 했으니 하겠어요? 해야 합니다. (37-25, 1970.12.22)

여러분은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밤이나 낮이나, 언제 어디 가든 선생님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 살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 머리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이 가는 방향에 보조를 맞추면서 모든 생명을 다 투입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31-221, 1970.6.7)

선생님은 하루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해서 해결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43-33, 1971.4.18)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미욱해야 됩니다. 충신들은 어떻게 보면 미욱한 사람들입니다. 조금은 미련해 보입니다. 곰 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팔을 잘리고도 `아이구, 여기 덜 잘랐다. 더 잘라라!` 하는, 그와 같은 미욱한 점이 있어야 합니다. 곰이나 멧돼지는 총에 맞아서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입으로 잘라 버리고 도망갑니다. 죽음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걸리적거리는 것을 잘라 버립니다. 그런 미욱한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충신열사는 미욱해야 합니다. 조금은 어리석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6-143, 1969.10.19)

하나님을 해방해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권위를 중심삼고 이상경에서 인류 시조와 함께 무한한 행복을 찬양하며 살 수 있는 가운데 모심을 받으면서 지내실 하나님이 이렇게 비참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우리의 손으로 해방시키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제안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종교계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불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요, 유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요, 회회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요, 기독교를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모든 종교가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합니다. (176-243, 1988.5.11)

선생님은 지금까지 뜻을 위해 고생해 나왔고, 지금도 자나 깨나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셔 보지 못한 사람은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선생님은 자다가 눈만 뜨면 엎드려 기도합니다. 왜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 이 한밤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성으로 같이하지 못하더라도 거기에 못지 않게 박자를 맞춰 줘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이 잠을 잘 때에는 모르니까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는 자식이 고단해서 잠자게 되면 아버지가 지켜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대신 기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26-138, 1969.10.19)

레버런 문은 어떤 사람이냐? 한 가지 재간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미욱하게 그저 똑바로만 가는 사람입니다. 아, 입을 좀 다물고 적당히 돌아가면 될 텐데, 왜 자꾸 욕먹게끔 작용을 하고 그러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아야 한 고개를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지요? 그러면 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고 가야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이끌리면 곧게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곧은 길을 찾아 오셨기 때문에 곧게 가야 된다는 겁니다. (97-257, 1978.3.19)

하나님이 그렇게 외로운 분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고독한 분이시기에 내가 죽는 날까지 그의 뜻과 그의 소원을 하나라도 풀어 주고, 그 분야의 한 터전이라도 확대시켜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사명인 줄 알고 나온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매를 맞아도 복수할 줄 모르고 사랑으로 참아 나온 것은 하나님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이고, 그분의 뜻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전통을 어떻게 세우느냐를 생각하면서 비틀걸음으로 혹은 허리를 꾸부리고 배밀이를 해가면서 이것만은 남겨야 된다고 하며 싸워 나온 것입니다. (82-47, 1975.12.30)

인간은 자기가 섰다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세워 놓아 봤자 넘어진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세워 주지 않더라도 하늘이 세워 주면 반드시 된다는 겁니다. (155-242, 1965.10.31)

참부모가 하는 것이 무엇이냐? 모든 것을 승리해가지고 하나님의 마음 깊은 데까지 찾아 들어가서 한을 해원하고, 그 승리권을 지상에 이루는 겁니다.

그러한 참부모가 출현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35-21, 1992.8.24)

여러분은 뜻길을 걸어 나오면서 얼마나 심각해 봤어요? 선생님은 일생 동안 그런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처자도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알아요. 고독단신 외로운 사나이가 가는 길을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이 협조해서 놀랄 만한 실적을 가지고 오늘날 이 사회에 문제를 제시했고, 또 피폐해 가는 이 민주세계의 사상권 내에 새로운 파급을 제시하는 문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82-47, 197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