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을 깨우치려 했던 선조들의 수고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6권 PDF전문보기

인간들을 깨우치려 했던 선조들의 수고

이제 우리는 깨어나야 되겠습니다. 깨어나야만 되겠습니다. 잠자던 눈을 떠야 되겠습니다. 움직이던 우리의 행동을 돌이켜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깨어날 수 있는 가. 여러분의 생애노정에 쌓은 어떠한 공적이 아닙니다. 그것 가지고는 역사적인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지금까지의 역사는 타락한 인간의 역사요, 심판받을 인연세계에 머물러 있는 역사인 연고로 이 땅 위에 남겨진 인연을 가지고 혹은 어떤 실적을 가지고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어떤 권세를 가지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소유했던 일체, 어떤 영광의 조건을 가지고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 우리는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돌이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성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각성을 하고 나서려면 인간들이 갖고 있는 마음이나 인간들이 갖고 있는 심정, 혹은 인간들의 인연, 인간들의 소원으로만은 안 됩니다.

그러면 가져야 될 그 하나의 마음은 무엇인가?

우리 것 이외의 역사, 즉 우리가 살아온 역사 이외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날 인류가 알고 있는 역사 이외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역사가 있었으니 우리가 모르는 역사적인 심정도 있었고, 우리가 모르는 역사적인 사정도 있었고, 우리가 모르는 역사적인 소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6천년 전에도 그러한 내용이 있었고, 4천년 전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고, 2천년전 예수 당시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을 대신하여 왔다 갔던 사람들, 그 시대를 깨우치기 위해 왔다 갔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뇨. 노아를 두고 말하면, 노아는 타락이후 1, 600년 동안 흘러온 인간들의 역사적인 심정 말고, 인간들의 역사적인 사정 말고, 인간들이 바라던 역사적인 소원 말고, 다른 역사적인 심정과 다른 역사적인 사정과 다른 역사적인 소원을 품고 소망을 모르는 인간 앞에 소망을 알게 해야 했고, 사정을 모르는 인간 앞에 사정을 알게 해야 했고, 심정을 모르는 인간 앞에 심정을 알게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홍수 심판의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던가.

역사적인 심정과 역사적인 사정과 역사적인 소원을 소개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다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역사 말고 인류가 알지 못하는 천적인 소원과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사정을 갖고 오셨습니다. 그 소원을 기반으로 하여 심정을 깨우치기 위해 오셨던 것이요, 사정의 인연을 맺기 위해 오셨던 것이요, 소망의 중심이 되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 인류가 그를 배척하고 나니 역사노정에는 하늘이 바라는 소원의 기준은 간 곳이 없어지고, 사정의 기준도, 심정의 기준도 간 곳이 없어지고, 하늘의 역사 그 자체만으로 열매를 맺고 예수는 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이것을 다시 연장시켜 6천년 역사의 종말을 향하여 인간 역사가 아닌 천적인 역사의 프로를 진행시켜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적인 역사와 이 땅의 역사의 진행기준을 맞추어 가지고 위로는 하늘을 붙들고 아래로는 인류 역사를 붙들고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그래야 할 것입니다. 하늘도 그러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그는 6천년 섭리역사, 인간역사 말고 천적인 섭리역사의 심정을 붙든 자요, 천적인 소원과 천적인 사정을 붙든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 과정에는 두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류는 땅의 역사의 내용은 해명할 줄 알지만 천륜이 움직여 나온 그 역사의 내용은 해명할래야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