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더불어 자연을 노래해 보지 못한 하나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06권 PDF전문보기

인간과 더불어 자연을 노래해 보지 못한 하나님

그러면 본연의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와 더불어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한 시간을 가졌느냐 하면 못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아들아, 저 산을 바라보아라. 저 산은 내가 어떻게 어떻게 지었다, 혹은 저 초목을 바라보아라. 이것은 내가 어떻게 어떻게 지었다. 이 모든 것은 너의 행복을 위해 지은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싶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제로 그런 말씀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왜 못하셨느냐? 아담이 아직 철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바라보면서 말씀하시고 싶었던 간절한 내적 심정이 있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정적으로 미숙한 자리에 있었기에 아담을 대하여 말씀하실 수 없었던 하나님의 사정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러실 수 있는 자리에 아담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붙들고, '야, 아담아, 내가 보고 싶은 저 동산의 꽃을 바라보아라, 내가 바라보고 싶은 산천을 같이 바라보자'라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라도 그러한 생활을 하였던들, 오늘의 인류는 이러한 도탄 중의 사망권내에서 허덕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여러분들은 그리워하여야 되겠습니다. 본연의 에덴을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있는 세계, 한번 시작하면 그대로 영원히 사랑의 감정에 화할 수 있는 세계, 한번 노래하면 영원 무궁토록 노래에 취할 수 있는 세계, 한번 뛰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뛰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세계, 한번 움직이고 한번 책임지면 이것은 영원한 가치의 책임이 된다 생각하고 노력할 수 있는 세계, 이러한 세계가 그리워 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심정을 지닌 인간을 찾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땅을 대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그러한 사람을 찾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도 산천 혹은 자연이 들어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빌어 가지고 우리의 감정을 높이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래요. 만일 본연의 세계에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이 가고 싶은 심정과 같은 심정으로 갈 수 있었던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얼마나 좋았겠어요.

이제 여러분들은 그런 심정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풍부한 자, 그런 심정을 체휼한 자가 바로 새 시대의, 새로운 이상천국 시대의 백성으로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복귀의 원한을 풀고 역사의 슬픔을 밟고 올라서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붙들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만물을 내 대신 즐겨다오. 이 만물을 내 대신 느껴다오. 이 만물을 내 대신 사랑해 다오' 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을 붙들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느 한 때에 신비스러운 분위기, 혹은 은혜의 분위기에서, 자연의 꽃 한 포기를 바라보는 것을 마음으로 그리워한 적이 있었습니까? 또 조상의 누구를 만나는 것과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대해본 적이 있었습니까? 혹은 산천을 바라보게 될 때, 품겨 들어오는 자극에 자기도 모르는 찬미를 하늘 앞에 드린 일이 있습니까? 없다 할진대 여러분은 만물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나는 단정합니다. 인간들이 그리워하는 에덴동산이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만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이 심정을 통하여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그리워할 곳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도하기를 인간을 위해서만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안 합니다. 인간을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늘을 위하여 기도해야 되겠단 말이에요. 예수를 위하여 기도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셨는 데 갚아야지요. 다음으로 오늘날까지 수고하신 하나님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고, 더 나아가서는 만민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감정에 사는 사람이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체험을 해보니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길을 걷다가 고단한 자리에서, 쉬는 자리에서 그런 감정이 있다 하면 하늘이 반드시 같이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 그루의 늙은 느티나무 뿌리를 붙들고도 거기에서 하늘의 심정을 노래할 수 있고, 그늘진 큰 바위를 의지하고도 거기를 안식의 보금자리로 하늘의 정서를 노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