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그의 신부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19권 PDF전문보기

예수님과 그의 신부

하나님은 지금까지 바로 이러한 날들을 찾기 위하여 수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들을 찾아 세우려 하셨고 딸을 찾아 세우려 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구원섭리는 누구를 중심삼고 했습니까? 남자를 중심삼고 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남자들이 섭리를 위하여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싸움에 일등한 사람이 있으면 싸움에 일등한 가정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엔 그런 종족과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일등 한 나라가 모셔야 됩니다. 그러한 터전을 만들기 위하여 선민사상이 역사과정에 나왔던 것입니다. 그 선민사상으로 선민을 지도해 나온 책임자는 바로 남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상대적으로 하셨습니다. 남자는 이 평면세상, 횡적인 세상에서 내적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내적으로 서서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맞지 않고는 외적인 천지에서 그 무엇이 이루어진다 해도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내적 환경에서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한 국가를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그것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민의 규모보다 더 큰 민족으로서 선민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를 중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한 남자를 찾아 세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서 기뻐하는 것은 누구의 기쁨이 되는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은 그 사실을 볼 때, 그것은 남자를 중심삼은 구원섭리였습니다. 그렇지요? 그런 역사과정에서 슬픔과 고통과 비참함이 사무쳐 있는 역사적인 고난이 노정을 헤치고, 현실세계의 비참한 요소들을 제거시키며 또 그 가운데서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는 하나의 중심 인물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만민이 고대하던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메시아, 즉 예수님이 탄생함으로 말미암아 에덴 동산에서 잃어버렸던 그 아들이 탄생하던 때의 기쁨을 다시 느끼실 수 있는 때를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태어나서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싸움을 잘 해야 하는 것도, 돈을 잘 벌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장가를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장가를 갔습니까? 못 갔습니다. 왜 장가 못 갔습니까? 예수님은 신랑으로서 너무나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신부로서 갖추어진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습니까? 세계 앞에 복귀의 한을 풀 수 있는 부활의 날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신 날은 기뻐할 수 있는 날이되었지만, 하나님의 광명의 날은 어떻게 해야 올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축복의 한 날을 맞이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그 소원의 날이 절벽에 부딪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향하여 달리던 배가 돌개바람을 만나 돛대가 부러지고 방향도, 목적도 다 잃고 만 것과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왜 신부가 필요한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고한 남성들 앞에 상대적인 내용을 지닐 수 있는 한 여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일대가 아니고 역사를 통해서 왔습니다. 아벨에서부터 싸워 가지고 노아, 아브라함 등을 통하여 수천년을 거쳐 왔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심정을 가진 사나이 앞에 역사적인 심정을 지닌 여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여자가 나타나서 예수님 앞에 상대적인 존재로 설 수 있었더라면 예수님 일대에 역사적인 슬픔을 한꺼번에 탕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해와가 죽지 않고 역사적인 출발을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함께 해와가 출발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해와와 같은 존재가 나와 그 일대에 역사적인 모든 것을 탕감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귀 해원의 터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