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오셔서 먼저 이루어야 했던 것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3권 PDF전문보기

예수님이 오셔서 먼저 이루어야 했던 것

이처럼 기독교인들이 준비해 놓아야 할 것이 예수님이 바라던 제1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 제1의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제2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사업해서 성공하면 천국 갈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는 천국에 못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1의 목적은 무엇이냐? 신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신부를 맞아서 어린양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이 어린양 잔치는 무엇이냐? 성경에도 그렇게 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제일 왕자님이 색시를 맞이하여 살림살이를 시작하는 잔치입니다.

그러면 그 잔치 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기독교인들은 구름 타고 공중으로 둥실둥실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 머리가 좋아도 그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웃음)

하나님의 제일 왕자가 신부를 데려다가 어린양 잔치를 한 다음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가야 되겠습니까? 땅에서 살림살이를 해야 되겠습니까? 찾고자 하는 분을 찾았으면 그 자리에서 춤도 춰야지 구경이라도 한번 하지요. 왜오자 마자 잘 믿는 기독교인들은 전부다 데리고 올라가서 공중 잔치를 합니까? 공중 잔치는 무슨 공중 잔치예요. 올라가기는 어디를 올라간다는 것입니까? 요즘엔 인공위성을 타고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또 내려와야 합니다. 공중에서 돌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지 어디 가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국 예수님의 목적은 신부를 얻어 가지고 가정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갔더니 문선생이라는 분이 예수님이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더라. 듣고 보니 기분 나쁘더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자기들은 아마 일등 신부나 특등 신부가 되어서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줄 알았던 모양이지요? 그러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가정. 가정을 이루었다면 예수님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가부(家父)가 되어야 합니다. 가부가 되는 동시에 가장(家長)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이 되어 가종주(家宗主)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느 기준까지 갔었던가? 가정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시려던 그 가정은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은 올바른 가정이 아닙니다. 6천년 동안 잘못되어 내려온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그 가정은 하나님이 좋으셔서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하실 수 있는 가정입니다. 우리 민요 중에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잘 노래했습니다. 한국 사람의 노래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부르고 싶은 노래일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이루어지면 그 가정이 된 가정입니까, 안 된 가정입니까? 그런 가정이 되지 못했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을 이루어서 무엇을 해야 됩니까? 자녀를 낳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자녀를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손자 손녀가 나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만 좋아하시는 분입니까? 어떤 사람이 자식을 10명 두었다고 해서 손자는 필요 없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아들만 갖기를 원합니까? 손자까지 보기를 원합니까? 손자도 원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러겠습니까? 「하나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뿌리라면 그 하나님을 닮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뒤집어 박고 거꾸로 해도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손자가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필요합니다」

이러한 말을 기성교인들이 들으면 아이쿠, 예수님이 장가 가야 된다는 말도 끔찍한데 저런 말까지….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니까 이단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꾸 살만 찌는구만. 그들은 배가 아파서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해도 선생님은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 이단이 나와야 그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공부 못하는 녀석들에게 자극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녀석들은 그저 공부 못한다는 소문을 내고 창피를 주어야 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간접적인 자극을 주는 데도 선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