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동의 중심체가 되는 경계선을 넘으려면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9권 PDF전문보기

화동의 중심체가 되는 경계선을 넘으려면

그러면,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한 화동의 중심체가 되는 경계선을 어떻게 넘어설 것이냐? 존재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새로운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격을 형성해야 합니다. 결국은 심정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말씀과 하나되어야 하나님과 같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과 하나되면 그 경계선에 연결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기적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창조를 누구 때문에 하였느냐?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중심이 되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 기쁘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기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없이는 기쁨이 없습니다. 목적을 중심삼고 환경을 이 목적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지만 이 환경에는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지키면서 목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말은 사된 말이 아닙니까? 전부다 타락권내의 사된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하는 말을 하나님이 싫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화동의 중심체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 절대자가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 절대자와 관계 맺을 수 있는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봤어요? 절대자 앞에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돈 얘기를 하겠어요? 내가 남자니 색시를 구해 달라고 하겠어요? 어떤 말을 하겠어요?

여러분은 부모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태어나서 말할 수 있는 대상이 누구겠습니까? 부모입니다. 부모. 그렇지 않아요?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뭐냐? 아빠 엄마입니다. 그 이상 뭐가 있겠어요? 내가 부르는 아빠 엄마는 옛날 인간이 본연의 자리에서 부르던 아빠 엄마입니다. 재미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아빠 엄마를 천번 만번 불러 보십시오. 아빠 엄마의 맛이 어떤가를 알아보십시오. 그 맛이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아빠 엄마를 부르는데 그 아빠 엄마가 대답하지 안겠습니까? 부르면 대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체와 대상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대상이 있으면 완전한 주체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라면 아빠 엄마를 부르면 반드시 대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없이 불러도 대답이 없는데 좋아하게 됩니까?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빠 엄마와 지내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엄마의 품에서 젖을 먹고 무릎에서 똥을 싸면서 자라지만 부모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이 참된 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참된 말이 무엇입니까? 그 다음에는 `형님' `누나'입니다. 이런 단계를 지난 다음에는 대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태어났기에 사랑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완성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를 품고 사랑해야 합니다. 만물을 주관해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러한 세계는 반드시 있습니다.

경계선을 넘어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길이 두 길입니까?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6천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 사랑은 역사적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어요, 없어요? 옛날 2천년 전의 부모의 사랑과 지금 부모의 사랑이 다른 게 있습니까? 다른 게 없습니다. 이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이나 식물도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에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자체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부자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동족에 대한 사랑은 차원은 다르지만 절대적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를 이끌어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락한 세상을 버리고 본연의 세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더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전에 있던 것을 버리게 됩니다. 더 좋아하는 것을 갖지 않고 버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생명을 버린다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