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이 가는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9권 PDF전문보기

아벨이 가는 길

그런 동정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한 도(道)에 있어서 하늘의 운이, 혹은 국가의 운이 찾아오게 되면 그 동정의 인연을 남긴 사람을 통하여 그 도민들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이 아니겠습니까? 한 나라의 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수습해 가지고 삼천만 민족을 이끌고 갈 수 있고, 하늘로부터 삼천만 민족이 받는 동정 이상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삼천만 민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온 세계 30억 인류를 다 잃어버리더라도 거기에 대표적인 한 사람이 있어서 하늘로부터 30억 인류가 받을 수 있는 동정 이상의 동정을 받는다면 그때부터 30억 인류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가는 길, 아담의 사명을 책임진 사람들이 가는 길은 이러한 책임, 이러한 사명을 하기 위해 수고하며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난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래서 우리를 아벨이 죽은 경계선까지 몰아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120년간 수난의 길을 걷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왜? 노아의 전체의 생애 가운데 어느 때 보다도 귀중한 하나의 동정심을 남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난의 길을 내몰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도 정든 고향 산천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해서 나그네 신세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젯날의 행복을 노래하기 이전에 오늘 최고의 불행한 기점에서 서서, 그 행복의 여운을 하늘 것으로 받들고, 그 가치와 더불어 스스로 길을 개척해 가지고 행복을 노래하는 것에 일치화시키는 싸움의 노정을 감사히 가겠다는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이 노정에서 비로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동정의 내용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입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외로운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에 나라를 잃어버린 하나님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요, 외국 땅에서 나그네 신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사탄세계인 외국 땅에서 섭리하시는 서글픔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런 노정을 걸어 나오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그런 자리에 나서는 것을 보게 되면 자기를 걸어 놓고, 명예를 걸어 놓고, 당신의 모든 이념을 걸어 놓고 여기에 동정심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부모의 입장에 선 하나님의 책임의식인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수난의 길로 내모는 것은 결코 우리를 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기 위함도 아닙니다. 그것은 동정의 인연을 공고히 하여 그 위에 찾아올 영원한 위업을 상속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은 당시의 살아 있는 순간적인 과정만을 중심삼고 생각한 나머지 하나님 앞에 패배의 길을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간적인 역사과정을 넘어 몇 천 년, 몇만 년 이전의 역사를 바라보실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역사과정까지 바라보시고 영원한 복을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망각했던 수많은 조상들은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