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자들이 넘어야 할 고개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29권 PDF전문보기

신앙자들이 넘어야 할 고개

예수님과 인간을 두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인간을 대신하여 제물되어 갔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 인간이 제물된 예수님을 중심삼고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은 예수님이 제물될 때까지의 노정 전체를 우리가 체휼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체휼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완전한 제자가 되느냐 못되느냐, 또는 완전한 믿음의 아들딸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아픔을 예수님의 아픔으로만 받아들일 뿐 자기 자신과는 관계없는 분립된 입장에 서서 감상만 하는 자들은 자신이 제물되었다는 입장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물되신 예수님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느끼고 제물과 하나된 자리에 선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랑을 유린당하셨던 하나님의 아픔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의 그 아픔, 그 사랑의 심정을 체휼해야만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예수님을 중심삼고 신앙생활을 해 온 수많은 기독교신도들을 두고 볼 때, 과연 서럽게 태어나서 십자가의 길까지 갔던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만민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면서도 원수를 대하여 복수의 심정을 갖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심정의 아픔이 얼마나 컸겠어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것을 완전히 우리가 받으려면 반드시 예수님이 가졌던 아픔 이상의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그러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려고 했던 것을 우리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한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이냐? 그것은 원한에 사무친 그분에 대한 동정심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인연을 자아내지 않고는 받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음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서 돌아가셨는가? 만민을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을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시게 된 동기는 무엇이냐? 배반의 역사를 엮어 왔고 천륜 앞에 용납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선 우리이기 때문에 그런 우리를 대신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대신 돌아가신 그분의 아픔을 우리는 동정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지은 죄를 넘고 나서 그분을 동정할 수 있고, 또 죄를 넘고 나서 우리가 동정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제물이 되지 않고는 승리의 자리, 기쁨의 자리는 우리 앞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들이 넘어야 할 고개요, 제물 드리는 자로서의 가야 할 내정적인 일치점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