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도 피해 가는 사람이 되자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4권 PDF전문보기

사탄도 피해 가는 사람이 되자

우리 생활 가운데는 탕감의 시대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에서나 비정상적인 생활에 있어서 불행한 자리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행을 불행으로 소화해서는 안 됩니다. 불행한 처지에 부딪쳤을 때 나 혼자 그것을 해결지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소화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 불행한 일이 있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이 탕감의 역사를 해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탕감의 역사는 민족과 세계를 걸어 놓고 하는 것입니다. 탕감의 역사를 하는 데는 선한 사람이 제물이 되지 않고는 탕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복귀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나 자신이 불행한 자리에 섰다면, 그것은 내가 만민을 살리기 위해 짐을 진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이런 짐을 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당한 도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소화시켜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대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함께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무한히 주고도 남을 수 있고, 언제든지 무한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가 좋다고 해서 '하나님, 오늘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슬프다고 해서 '하나님, 오늘은 참으로 슬펐습니다' 이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감사하고, 나쁘면 나쁜 대로 감사해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는 마이너스가 될는지 모르지만 공적인 분야에 있어서 전체 앞에 좋을 수 있다면 전체를 위해서 좋아해야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전체가 좋을 수 있다면 좋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선은 전체 앞에 좋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보다 귀하고 보다 넓은 범위의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선이기 때문에, 나는 비록 외롭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상대의 세계에 선을 주기 위해서는 그런 고통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정석온씨의 모친이 김성도씨인데, 김성도씨와 정석온씨는 감사하는 패들입니다.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패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사탄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사탄이 침범했다가도 도망가는 것입니다. 설사 사탄의 침범을 받더라도 '전체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시련을 주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한 번 대하고, 두 번 대하고, 세 번 대하고…, 대하면 대할수록 자신이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대하라고 해도 안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피해 가려고 하면 할수록 사탄은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좋은 것만을 대하시는 하나님이셔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슬픈 입장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인간들과 하나되기 위해서 그 슬픔을 몽땅 도맡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슬픈 표정을 짓지 않고, 슬프지 않다 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선한 하나님, 기쁨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기쁨의 출발을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슬픈 이 땅을 위해서 수고로운 노정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우니 못 갈 길이라고 생각했다면 선은 출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길이 선을 위해서 가는 길이요, 보다 빛나는 선의 가치를 찾기 위한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 길이 죽음의 길이라도 거기에서 무한한 행복을 찾고, 영원한 기쁨을 찾으며 갔던 것입니다. 출발이 기쁨의 출발이 되지는 않았지만 슬픈 내용을 기쁨으로 감싸고 기쁨으로 소화시켜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을 중심삼지 않고는 기쁜 천국을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기쁨이나 행복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만민의 슬픔을 도맡으라는 것입니다. 만민의 죽음과 고통을 도맡으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희생되더라도 만민에게 행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뜻 앞에 있어서 무한히 고통스럽고 무한히 두렵고 최후의 장벽에 부딪쳤을 때는 절망스럽지만 그 자리에서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 절망을 넘어서서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는 길이 망하는 길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세계를 위해서 고개를 넘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새로운 기쁨의 기독교 역사가 출발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