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본이 되어야 할 통일교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4권 PDF전문보기

세상에 본이 되어야 할 통일교회

여러분에게 늘 극복하라고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참고 넘어가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고 넘어가는 데 있어서 울고 불고 하며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극복이라는 것은 어렵더라도 어렵지 않는 모습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슬프더라도 슬프지 않는 모습으로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극복입니다. 마지못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참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기쁨으로 소화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만이, 악한 것도, 지옥도 천국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신앙인으로서 본이 될 수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개인적인 본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단체적인 기반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70년 내지 80년을 산다고 볼 때 그 가운데 3분의 2가 슬픈 생활이라고 한다면, 이 3분의 2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쁜 생활로 만들어야 됩니다. 천국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주면서 사는 곳입니다. 하나님도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또 주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애기들에게 아무리 때때옷을 왜 입히고, 아무리 좋은 것을 먹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자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애에 있어서 3분의 2가 불행한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을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개가 있습니다. 그 고개를 무너뜨려 가지고 소화시킬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상금을 주신다면, 상금을 주는 그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만민이 보는 자리에서 상금을 주실 것이냐? 아닙니다. 물론 거기에서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자리에서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서 따라가는 그런 자리보다는 최후의 자리에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보물이라면 혼자에게만 주고 싶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따라오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살아 남은 자, 죽음의 고비에서도 살아 남은 사람에게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상금을 어디에서 받을 것이냐? 여러분이 이 문제를 결정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고통이 온다고 해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기쁜 자리에서 상금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슬픈 자리에서 상금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면서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슬픔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하관계 전후좌우관계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모두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책을 읽었을 때도 갑이라는 사람은 무한한 감명을 받고 그것을 절대적인 가치로 알았는데 을이라는 사람은 '그거 뭐 그저 그렇구만' 하고 아무 감동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감각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읽는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그 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감동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데에도 어떤 사람은 기쁜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슬픈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성신도 불 같은 성신, 물 같은 성신, 구름 같은 성신, 비단 같은 성신이 있다고 하지요? 모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갑이라는 사람은 행복하게 생활을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할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고통을 당한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얼마든지 더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우리 통일교회가 수난의 길과 고통의 길을 가고 있지만 이것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기성교회보다 행복한 것입니다. 그들보다 한 발 앞섰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 있어서, 혹은 미래의 세계에 있어서는 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만인에게서 숭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도 행복을 느끼면 그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스런 자리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고통스러운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타락하기 쉽고 떨어지기 쉽지만 아예 밑으로 내려가서 행복을 찾아 나오는 사람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가면 갈수록 행복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은 어려운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아이구 좋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항상 좋은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좋은 것은 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자리, 슬픈 자리를 소화시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생활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은혜로운 생활, 건강한 생활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