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하늘땅을 위해 살아야 영원히 남는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5권 PDF전문보기

세계와 하늘땅을 위해 살아야 영원히 남는다

흘러갈 테면 다 흘러가라! 몇 사람이나 남을 것이냐? 생명이 끝나는 자리에서 '주여, 나만 남았나이다'하고 엘리야가 말했던 것처럼 그런 자리는 한 번뿐이라는 겁니다. 개인으로서 믿고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다 물러갈 때, 나는 한 개인으로 남아질 것이냐? 통일교회면 통일교회의 가정들을 중심삼고 내가 축복해 주고 믿었던 수많은 가정들이 물러간다면 나는 가정적인 패자의 입장에서 실패했다고 할 것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단을 두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단을 중심삼고 나가다 다 쓰러지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로 돌아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거기에 만일 한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은 바로 통일교회를 대표한 사람이요, 천만인을 대신하는 희망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와 내가 하나되면, 다시 말하면 창조원리에서 말하는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실제적인 창조의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가는 길 앞에 실패란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나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마이너스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을 요구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런 결심을 못 가졌다고 하면 그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행사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아무리 초췌하고 미미하더라도 그런 결심을 가졌다고 하면, 그 사람을 통하여 하늘의 새로운 기틀이 마련되고, 새로운 역사의 창건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이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감옥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가야 됩니다. 가는 데는 온갖 정성을 들이며 가야 됩니다. 핍박을 당하더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충성의 도리를 다하며 가야 됩니다. 그렇게 가는 사람은 가다가 아무리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걸어온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같이 하셨습니다. 나를 사지에 몰아넣는 원수가 있다면 그 원수 두고 보자 이겁니다. 그 원수의 아들딸이 나를 구해 줄 것입니다. 그것이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최고의 작전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 목사, 장로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했지만, 앞으로 그 목사 장로의 아들딸들은 선생님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통일교회를 반대했던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 무덤까지 파 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게 될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데는 그 이상 좋은 작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강제적으로 그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앞에 반역한 사람을 숙청하는데 그 아들딸들이 총칼을 겨누어 자기 부모를 숙청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총칼을 겨누어서 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눈물로써 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볼 때, 방법은 같은 것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내용이 다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들이 역사시대뿐만 아니라, 사탄세계에도 남길 수 있고, 하늘 세계에도 남길 수 있는 유물을 남겨야 합니다. 그 유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두고 볼 때 그것은 자신만을 위한 생애가 아닌 것입니다. 그 생애는 세계를 위한 생애요, 하늘땅을 위한 생애이어야만 역사에 길이 남아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 하루 하루의 생활을 거치지 않고는 여러분의 생애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생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생활을 남길 수 있는 생활로서, 그때 그때의 시간을 남길 수 있는 시간으로서 보내기 위해 우리 앞에 어떠한 고빗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내 일대에 어떤 고빗길이 있다 해도 어떤 탄력을 이용해서 그 고빗길을 넘어 제2의 고지를 일시에 탈환하고 넘어가기 위한 작전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년에, 혹은 자기 일대에서만 끝난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길은 무궁한 것입니다. 그 고빗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빗길을 넘으면서 당하는 시련이 문제가 아닙니다. 시련 후에 찾아올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궁금하다는 겁니다. 시련을 겪는 그 자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련 후에는 반드시 무엇이 온다는 것입니다.

현재에 당하고 있는 시련보다도 그 시련을 극복하고 난 결과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될 때, 감동과 감격이 지금 당하고 있는 시련보다 더 클 때 우리는 언제나 승리의 자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