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예수님과 요셉의 중간 역할을 해야 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38권 PDF전문보기

마리아는 예수님과 요셉의 중간 역할을 해야 했다

아기를 낳자니 뭇사람들이 쳐다볼 것이고, 명문의 딸이 사생아를 배어 배가 불룩해 가지고 뒤뚱뒤뚱 걷는 것을 그 부모들이 볼 수 있었겠습니까? 체면과 위신을 모를 리 없는 마리아는 그렇다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하나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다고 했으니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연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고독한 심정을 홀로 부등켜 안고 여자로서의 최고의 사지권(死地圈)에서 허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가 이 군중 앞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사정이 못 됩니다. 내가 아기를 낳아야 한다면 나그네 신세도 좋고, 짚시의 신세도 놓으니 국경을 넘는 일이 있을지라도 이 지역을 벗어나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했을 겁니다. 일구월심 이런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리아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호적하러 가는 길에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뜻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후대하신 사랑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이래서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으면 부모는 손주를 보았으니 기뻐하고, 형제와 친척들은 모두 기쁨으로 환영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입장이 안 되어 있으니 예수님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헤롯왕이 예수님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요셉과 마리아에게 알려주어 애급으로 피신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향을 등지고 애급에 가서 3년 동안 지내다가 헤롯왕이 죽은 후 다시 갈릴리 해변가로 돌아와 살면서 예수님은 남모르는 성장과정을 거쳐 왔던 것입니다. 의붓자식의 몸으로 태어난 예수님이 요셉 가정에서 30년 동안 목수의 일을 도우면서 편안한 생활을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의 정이 틀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정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정을 하나에서 천만사에 이르기까지 알아줄 수 있는 가정이 못 됐던 것입니다. 마리아도 그런 사정권내에 살면서 남편 요셉을 바라볼 적마다 과거의 모든 일들을 남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러지 않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품고 요셉 앞에서 자랑스럽게 젖을 먹일 수 있는 입장이 못 됐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엇갈리는 심정을 예수님이 자라면서 체득하게 될 때에 자기 어머니의 무릎에 가서 앉으려 해도 요셉의 눈치를 봐야 되었던 것입니다. 의붓자식은 의붓부모를 안 따르는 법입니다. 또한 동생들한테까지도 환영받지 못하는 판국이 벌어지게 되니 예수님이 얼마나 고독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해서 세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는 누구를 위해서 세운 것이냐? 예수님 하나 사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고 유대교를 대표하여 유대 지파의 요셉 족속을 택한 이유는 어느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요셉과 마리아를 택해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고, 마리아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진정한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예수님의 깊은 심정을 알아 가지고, 내가 금후의 할 일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과 의논하면서 요셉과 예수님의 중간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 가정에서 예수님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주도적인 역할은 예수님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러한 책임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과거로부터 요셉과 엇갈린 심정이 누적되어 있는 사정에 몰린 마리아는 알면서도 요셉의 눈치를 보는 입장에서 예수님을 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를 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