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든 것 다 바쳐 위하는 것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4권 PDF전문보기

사랑은 모든 것 다 바쳐 위하는 것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 교인은 사랑을 크게 제일 말하고 있지만 막상 가 보면 냉랭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냉랭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가 보면 그 무엇인지 모르게 맛이 있다.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멋진 데가 있다'라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모든 사연을 중심삼고 통하지 않을 것이 없는 주체적 입장에 서야 합니다. 위함받기 위한 입장이 아니라 위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위할 수 있는 입장만 되면 그 교회에 사랑이라는 명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여 '야 이 자식아. 네가 뱃속에서 나을 때 얼마나 내 살덩이와 피를 빨아먹고 나왔어 ? 지금까지 파먹었는데도 뭐가 불만이 라고 또 꽥꽥거리는 거야, 이녀석아' 그래요?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예요?(웃음) '오 그래. 주는 대로 잘 먹는구만. 더 주어야지' 하면서 자식을 자기의 가슴에 품고서 '어서 먹어라. 어서 먹어라' 하면서 빨대를 들이대고서 빨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주지 못해 안타까와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이게 귀한 거라고요. 그런 자리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받겠다고 날뛰다가는…. 받아 보라는 거예요.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데는 희생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한 사랑이요, 절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어디에 가서 열매 맺힐 것이냐? 세계가 나에게 들어와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에 나가 열매 맺는 거예요. 세계에 나가서, 상대 세계에 가서 열매 맺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랑의 열매를 위해 희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도리요,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한 것인데, 누구에게 주셨어요? 만민 앞에 주겠습니다. 자식을 주고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자리에까지 나가셨고, 세계를 위해서 연속적인 희생을 치러 나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좋은 것이고 하나님이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고 만민을 사랑해야 합니다.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을 무한히 투입시키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무한히 투입시키라는 것입니다. 무한히 투입시키려니 통일교회는 무한한 부자가 되어야 하고, 무한한 발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통일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영원한 천국을 만들기 위해시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때를 바라고 나가기 때문에 그때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통일교회를 보고 기뻐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어 주고서야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날뛰면 날뛸 수록 점점 도와주지 않고서는 못 견디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뜻은 빨리 이루어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부모가 환갑을 맞아 잔치를 해드려야 할 입장에 두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 중에 형님은 극상으로 해드리겠다는 겁니다. 부모가 일생 동안 모아 둔 재산을 몽땅 팔고 자기 재산을 전부 다 팔고, 그것도 부족하여 자기 재산보다 몇 배의 빛을 져 가면서 잔치를 해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은 어머닌 아버지는 환갑잔치를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다고, 어머니 아버지가 돈을 번 것은 자식을 위해서 번 것이지 부모를 위해서 번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재산의 3분의 1쯤 가지고 환갑 잔치를 해도 효자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팔고 빛지고 하겠다는 무식하고 미욱한 형님하고 팔지 말고 남기고 하자는 동생이 싸우는 것을 부모가 바라볼 때 작은 녀석은 장래성이 있거든 요? 그런데 부모는 누가 더 자기들을 위하는 자식이라고 생각하겠어요?

주먹구구식으로 빛을 지더라도 재산을 몽땅 팔아 한번 잔치하고 망해도 좋다는 아들과 장래를 생각하고 그럴 것 없이 그냥 조건만 세우고 넘어가 자는 아들 가운데서 누가 더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는 아들이라고 생각하 겠어요? 다 팔아 치우고도 모자라서 빛이라도 지겠다고 하는 자식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 부모는 동생에게 '네 말도 맞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주장한 것은 진정 부모를 위해서 그런 것이냐? 네가 그렇게 아끼자는 것은 진짜 부모를 위해서 그런 것이냐, 아니면 앞으로 세간날 때 분깃을 더 많이 타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아들은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질문을 받을 자리에 있는 아들과 질문받지 않고 동정받을 자리에 있는 아들 중에 누가 효자냐? 질문 받을 자리에 있는 아들은 효자가 아닙니다.

그 아들은 누구를 생각해서 그랬느냐?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수고한 것을 생각하면 재산을 털어 바쳐 가지고 빛을 몇백 배 지더라도 그 수고를 보답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선 그런 효성의 마음을 가진 장자라고 한다면 무엇을 질문하고 비교 비판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몽땅 인정하고 들어가야 되는 거라고요. 부모는 이 아들에게 몽땅 인계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둘째 아들이 앞으로 자기가 상속받을 수 있는 양을 남기겠다고 생각할 때는 빼앗아 가지고 하나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