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쳐 오는 시련을 감수하라
미래를 향한 뜻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즉 미래의 소망을 향하여 자기 스스로 출발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분석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재에 있어서 그 누구도 극복하지 못할 수난길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한 사람이 있다면 역사는 반드시 그런 사람을 추구할 것입니다. 역사는 현재에 있어서 미래를 향하여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을 추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지도를 받고 싶어할 것이며,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상속받고 싶어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따라 미래를 향한 길에 보조를 맞추려고 온갖 정성을 다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록 개척자로서 서 있는 자리가 외롭다고 할지라도 외로운 자리가 아닙니다. 전후 사방에서 필요로 하는 요건을 중심삼고 볼 때, 개척자의 전생애는 외롭고 비참했을는지 모르지만, 미래를 대신한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만민이 그를 추앙할 것입니다. 또한 개척자의 자리는 참을 추구하고, 보다 나을 수 있는 고차적인 평화와 행복의 세계를 바라는 인류 앞에 있어서는 결코 고립된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환경에 부딪치는 어려움을 보다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동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동하고, 내가 정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정한다. 내가 현재의 입장에서 확고부동한 실체로서 중심의 입장을 대신한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승리권은 내 앞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현실적인 역사의 터전 위에 중심의 가치를 다짐함과 동시에 변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사상을 중심삼고 확고부동한 진로를 향하여 일보 일보 전진한다'라고 하면서 수난길과 대결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런 사람은 수난길을 가더라도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승리와 자기 개인의 희망의 가치를 보다 잘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다 간 사람일수록 역사적인 인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나는 세계를 위한 개척자다'라고 하며 나선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역사의 수난길을 도피하여 역사의 개척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는 역사 앞에 규탄받아야 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개척자가 되고, 또 역사 앞에 새로운 개척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수난길을 자기의 당연한 운명길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비참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것을 자기의 타고난 팔자로 생각하고, 그것을 못 하게 될 때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며 그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 불평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됩니다. 백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면 백만큼의 벌을 받아야 되는 것이요,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면 천만큼의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도 천에 해당하는 벌을 받지 않는 자리에 서게 될 때, '나는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는데, 왜 천의 벌을 주지 않느냐'고 도리어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벌을 받더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도 백만큼의 벌을 받는 것이 소원이요, 열만큼의 벌을 받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죄와 더불어서 끝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관계되었던 죄의 양은 그 사람에게서 청산되지 못하고 그의 후손이나 그의 민족이 청산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난길을 감수하고 나가야 할 개척자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자기는 이만큼의 수난을 바라보고 있는데 일시에 큰 수난이 몰아쳤다고 합시다. 여기에서 '어찌하여 내 입장과는 상극적인 입장의 수난이 나에게 부딪쳐 오느냐'라고 하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강한 신념을 가진 개척자라고 자처하더라도 거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입장이 세계적인 입장은 못 되더라도, 세계적인 시련이 부딪쳐 올 때는 그것을 감수할 수 있고, 그 시련을 '오늘에 있어서 내가 진지하게 감수해 나가야 할 것이요, 오늘날 내 생활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필연적인 운명이다' 이렇게 알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수하고, 소화시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하여 부딪쳐 오는 시련을 분석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 앞에 천의 수난길이 왔다면 그것은 자기를 파탄시키는 동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재건할 수 있고, 내일에 있어서 보다 넓은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되는 데 필요한 환경으로 수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식구들은 새로운 역사를 창건해야 하고, 내일의 천국을 창건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만민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미래의 희망의 세계에 대해서 암담한 벽에 부딪쳐 있는 이 때에, 동서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적마다, 이제는 더 나갈 수 없는 단말마적인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이 땅에서 오늘날의 통일신도들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개척자의 사명을 다짐하고 나서겠다는 신념과 결의에 사무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진군하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