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을 모시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마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48권 PDF전문보기

우주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을 모시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마음

자, 그러면 사랑이 어디서 오느냐 할 패 하나님까지 올라갔어요, 하나님. 하나님은 귀한 분인데 이 귀한 분을…. 여러분, 귀한 보물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할 수 없어서 집에 두고 다니지요? 그것을 집에 두고 다니면 마음이 놓여요? 안 놓이지요?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몸에 지니고 다니려고 한다구요.

어떤 사람들은 옛날에 첫사랑을 할 때 장래를 약속하며 주고받은 애인의 물건을 가지고 다닙니다. 누더기같이 되어 날아가던 파리도 안 붙을 만큼 형편없는 것이라도 싸고 또 싸 가지고 차고 다니고 이렇게 끼고 다니는 사람을 내가 보았습니다. 그것을 몇 년 동안 가지고 다녔느냐고 물으니까 수십년 동안 가지고 다녔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길래 그러느냐? 그 사람은 그것을 제일 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의 살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싶고, 그것을 만약 훔쳐가겠으면 살을 째고 그 속에 넣어 꿰매어 두고, 그래도 밤에 잘 때 누가 살을 째고 훔쳐갈지 모른다고 생각되면, 뼈에 구멍을 뚫고 넣어 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을 어디에다 감출 것이냐, 어디에 두고 다닐 것이냐? 우주에서 제일 귀한 분을 여러분은 그냥 집에 두고 다니고 싶어요, 항상 갖고 다니고 싶어요? 도둑놈이 많은 세상이라 두고 다니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될 때 자기 몸에 그것을 갖고 다닐 수 있는 장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거예요.

그 장치가 뭐냐? 하나님을 모시고 다닐 수 있는 그 장치가 뭐냐? 그게 마음이예요, 마음. 이것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마음을 빼앗아 갈 수 있어요? 이것은 절대적이라구요. 이 마음속에 감추어 두면 말이예요. 조그만 고무통 같은 데 큰 것을 갖다 집어넣으면 큰 야단이지만….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나님 열 분이 들어와 있더라도,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이 있더라도 훌쩍 삼켜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하나님을 모셔 낼 수 있을 것 같소, 없을 것 같소?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면 어디에 맺을 것이냐? 틀림없이 마음입니다.

귀한 것은 남이 보는 거 싫다구요. 남이 들여다보고 '야! 고거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하면서 도둑질해 가는 거 싫다구요. 여러분, 마음을 볼 수 있어요? 마음이 있기는 있는데 볼 수 없다구요. 그걸 나는 알아요, 몰라요?「압니다」 나만이 안다구요. 나만이 알고 감춰둘 수 있는 곳을 우주 가운데서 찾다 찾다 보니 먼 데가 아닌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야! 그놈을 마음속에 다 감추면 그 이상 없겠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우주에서 제일 귀한 분이시니 그분을 어디다가 감추어 모시고 싶으냐? 마음 가예요, 깊은 골짜기예요?「깊은 골짜기요」 깊은 골짜기에 모셔 놓고는 어떻게 하려구요? 하나님을 굶겨 죽이려구요? 그건 안 된다구요. 깊은 골짜기에 숨겨 두더라도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길만 있다면 틀림없습니다. 마음속 깊이 꽁꽁꽁꽁 감춰 두어도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길이 뭐냐? 무슨 장사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하나님이 불편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꽁꽁 감춰 두고 '하나님과 나는 끊을수 없는 사랑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나가지 말고 나와 꽁꽁 묶어져서 하나됩시다' 하면 하나님이 싫어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자, 우리 나이 많은 양반들, 여기 전도관에서 오신 양반, 나이 많은 사람한테 물으면 틀림없겠지요? 어때요? 꽁꽁 묶어 가지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람의 맨 밑창에 깊이 들어가서 하나되고 싶소, 그저 적당히 가다가 중턱에서 하나되고 싶소? 중턱에서요? 밑창에서요?「밑창에서요」 밑창도 어느 밑창? 맨 밑창 골짜기지요? 요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찾아보게 될 때 그길을 돌파하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무슨 길밖에 없다구요? 사랑의 길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귀여운 아들딸에게 사랑의 표시를 할 때는 어떻게 합디까? '아이고 곱다' 그래요? 그저 품에다 안고 얼굴을 비비고 하는 것입니다. 난 뭐 그럴 것 같은데 여러분들은 어때요? 아주머니들은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그 자리를 찾게 될 때, 그건 아들의 자리 외에는 없습니다. 아들의 자리 외에는 없어요. 그 다음에는 상대적 관계 외에는 없습니다. 결론이 나왔어요.

그러면 '나'라는 존재를 두고 볼 때, '나'라는 존재는 위로 부모로부터 사랑을 상속받아 가지고 그 부모를 몽땅 자기 마음에 모시면 그 부모가 불만스러워해요, 행복스러워해요? 몽땅 자기 마음에 그 부모를 모셔 두고 사랑한다고 할 때,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좋아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아담 해와가 부모인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몽땅 받고 '하나님, 죽더라도 못 나갑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모르지만, 사랑이 부족하지 않는 한 못 나갑니다' 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어요? 하나님도 '그러고 말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과 나와는 어떤 관계냐? 안팎관계가 되고 싶다. 그렇지 않아요? 안팎관계인데 무엇을 중심삼고 맺어 놓고 하나 만들고 싶으냐?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라는 건 사랑을 안 가지고는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집은 하나되어 있어' 그럴 때는 돈 가지고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언제나 하나되어 있어' 그런 말 하지요? '우리 형제끼리는 의가 좋아', '우리 집은 다 평화로와', '우리 집은 너나할것없이 하나 되어 있어' 이런 말을 하게 될 때 그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 말이예요? 돈을 가지고요? 어머니 서열, 장자 서열, 차자 서열 가지고요? 아니라구요. 이것은 정서적인 문제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알 거라구요. 하나님과 인간이 안팎관계로서 하나되어 가지고 이것을 묶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묶느냐? '너자 나요. 나자 너'라는 경지에 까지 가야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