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통을 소화시키는 자만이 이 세계를 책임질 수 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4권 PDF전문보기

슬픔과 고통을 소화시키는 자만이 이 세계를 책임질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의 이때는 어떤 때이냐?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는 때입니다. 전부가 한꺼번에 우리의 목전에 세계적으로 부딪혀 오는 때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소화시키려면,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쁠 수 있는 것만을 가지고 어려울 수 있는 것을 소화시키고, 슬플 수 있는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그런 세계를 이어받을 사람이 나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러니 기쁨을 주관하는 그러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비참하고 슬픈 길을 각오하면서 끝까지 다 갔다고 할 때는, 그들이 가는 길은 기쁨만이 남을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미래의 기쁨을 추구함과 동시에, 현실의 개척자로서 의분심을 가지고 오늘의 슬픔을 소화시키자는 것입니다. 나라의 슬픔이 있으면 그 슬픔의 뒤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극복하고 넘어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또한, 나라의 어려움이 있으면 그 어려움을 대해 도망가거나 회피해 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정면적으로 부딪쳐서 그 어려움을 내가 책임지고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가는 데는 울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의젓하게 당당하게 희망 가운데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책임해 가지고 그 경지를 극복하는 날에는, 그 사람에게는 그 슬펐던 일이 도리어 더 큰 기쁨을 자극시킬 수 있을 것이고, 어려웠던 일이 도리어 기쁨의 터전이 되고 자랑의 조건이 될 것이 아니냐.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이상의 관문이 개문될 것이 아니냐. 그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오늘날 오고 가는 인생길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기쁨의 소원을 가지고 슬픔과 고통을 책임지려는 사람이 있었더냐? 없었다 이거예요.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 가지고 하나님의 이상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슬픔과 인류의 슬픔을 책임지려고 했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냐.

시대적인 이 종말기에 오늘날 기독교를 대표한 우리 통일교회가 그런 입장에 서서, 원대하고 높은 희망을 가지고, 미래의 소망을 위한 현실적 소망의 실천 무대로 삼아 여기에 부딪쳐 오는 전부가 슬픔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소망 앞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고통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고통으로 열매맺을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기쁨과 영광의 자극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 이라면 망해들어가는 이 시대상을 틀림없이 책임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망하는 이 세계를 연장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