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물을 드리려면 영육으로 사탄을 굴복시켜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67권 PDF전문보기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물을 드리려면 영육으로 사탄을 굴복시켜야

그러면, 여기에서 야곱이 어떠한 자리에 섰느냐? 3대 제물, 부모와 자식과 물질이 하나되어 가지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한꺼번에 바치게 될 때 하나님이 완전히 받아 주실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선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다는 이거예요.

그러면 이제, 이걸 바치는 데는 그냥 그대로 바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야곱만 있기 때문에 바치는 데는 그냥 바칠 수 없다 이거예요. 그것을 가인보다도 나은 자리에서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예요. 가인 자리보다도 나은 자리에서만이 아벨이 제물을 바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이 참소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바칠 수 없다는 거예요. 제물을 바칠 때는 반드시 아벨 제물이 가인 제물보다 나아야 됩니다. 이게 원칙이라구요. 그러면 그 가인이 누구냐? 그것이 에서인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평면적인 입장에 있지만 하나님과 사탄은 입체적인 입장에서 주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의 주류사상이 어떻게 돼야 되느냐? 내 갖고 있는 소유나, 내 갖고 있는 아들이나, 내 갖고 있는 아내까지도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이니 내 것이 아니라는 관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뜻 하나 이루는 데 제시하겠다는 사상이 주류 사상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가는 데는 누구를 찾아가느냐? 물론 고향을 찾아가지만 문제의 해결점은 에서인 것입니다. 에서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과 하나되고 사탄은 에서와 하나되어 가지고…. 결국은 여기서 야곱이라는 인물을 놓고, 야곱이 어떻게 하늘편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일치될 수 있는 사상적 관에 서느냐, 제물을 드릴 수 있는 당당한 아벨의 자리에 서느냐, 그렇지 않으면 조건에 걸릴 수 있는 자리에 서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과 사탄이 주시하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에서를 굴복시켜서, 에서보다 나아야 됩니다. 에서보다 나아야 된다는 말은 실체적인 에서뿐만 아니라 영적인 에서까지도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고향을 찾아가 최후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야곱은 에서를 놓고 담판기도를 한 것입니다. 자기가 만약에 고향에 가는 날에는 에서가 죽이려고 할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이 틀어지겠으니까 에서가 반대하지 않고 환영할 수 있기를 바라 가지고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가 가는 것은 그 개인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실수한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 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첫 번 실수한 것이 무엇이냐? 천사장한테 굴복한 것입니다. 그러니 영적으로 천사장을 이겨야 된다구요. 실체 에서를 굴복시키기 전에 영적인 에서와 같은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것을, 천사장한테 굴복한 것을 실체 에서를 중심삼고 탕감하기 위해서는, 두 면을 복귀하는 데는 먼저 영적으로 천사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