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유엔총회에서 한국안이 가결되기까지의 사연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75권 PDF전문보기

1974년 유엔총회에서 한국안이 가결되기까지의 사연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금번 유엔총회를 중심삼고 한국문제가 상당히 곤경에 빠진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조직을 동원해서 정보를 얻어낸 것입니다. 유엔총회 의장으로부터 그 보좌관, 그리고 거기에 참석한 각국의 대사와 옵서버들이 평가하는 것을 총괄적으로 놓고 볼 때 한국문제는 이미 희망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볼 때 종교 지도자로서, 혹은 통일교회를 창설하고 통일교회를 지도해 나오는 책임자로서 통일교회 자체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통일교회는 국가를 위해서 있어야 되겠다, 국가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국가가 되게 인도해야 되겠다고 본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고 선전이 필요 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나는 30여개 국의 선교사를 모아서 34명의 각국의 대표자를 선출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일본 여자 34명을 그들에게 붙여 가지고 68명의 멤버를 유엔총회에 투입했습니다. 일대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설득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있는 정성을 다해서 그들을 위해라! 만나면 먹는 것에서부터 말하는 것으로부터 그들을 위해서 노력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40일 고개를 넘으니 그들은 우리의 활동에 탄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종교를 지도하는 한 책임자로서 한국에 대한 세계의 여론이 아무리 불리하다 하더라도 50개 국의 대사들로부터 일본인 처(妻) 자유 왕래를 추진하는 이 문제에 사인만 받는 날에는 틀림없이 한국문제는 승리한다고 보았습니다. (박수)

그런 말을 할 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유엔총회 하게 되면 세계의 지성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가서 감히 그들을 대해 입을 벌릴 수 있는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위하는 그런 입장을 중심삼고…. 그곳을 아무 나라의 아무개의 사무실이 아니라 내 집 사무실로 알고, 가면 소제를 해주고 밤이 늦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한 시, 두 시를 개의치 않고 차를 동원하는 이런 활동을 배후에서 전개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겠지만 태리타운이라는 곳에 우리의 영빈관이 있습니다. 벨베디아라는 곳을 중심삼고 밤이면 70개 국에 해당하는 대사를 초대했습니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 보니 결국 그들은 완전히 우리편에 말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알아낸 것이지만 북괴는 이미 제 3세계권, 저개발 국가인 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나라 나라에 대해서 유엔총회에서 사인을 할 것을 다 결정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밀리에 말한 사실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북괴는 이미 5만 불에서 15만 불에 해당하는 돈을 전부다 지불해서 결정해 놓고 왔기 때문에…. 김일성 자신이 유엔에 파견하는 그 대표단을 대해서 승리의 축배를 올리고 파송했다는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고 눈물을 흘리고 밤을 새워 가면서 간곡한 사연을 통고하고 난 연후의 결과는 한국문제에 있어서 남한의 제안이 61대 42, 북한의 제안이 48대 48로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내가 여러분 앞에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이 원칙의 기준에 입각해서 일어나는 것을 나는 생애를 통해서 많이 체험해 왔습니다.

여러분이 알기를…. 도대체 통일교회가 뭐냐 이거예요. 여러분, 많은 신학자들이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로마 가톨릭과 희랍정교가 갈라진 것을 규합하려고 노력했지만 꿈에도 규합할 수 없었습니다. 또 많은 신교가나와 가지고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지만 4백여 교파로 갈라졌습니다. 이러한 실정에 있는데 도대체 통일교회가 어떻게 종교를 하나로 만들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가능하냐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