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은 예수님과 하나되어 그의 종족이 되어야 했다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77권 PDF전문보기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하나되어 그의 종족이 되어야 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종의 역사로서의 4천 년 역사를 거듭해 왔지만, 종의 역사를 잃지 않고 양자의 역사를 거치면서 아들을 대해 양자의 입장을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종으로서 하나님의 마음 앞에서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응하고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기에 하나 보태 아들의 마음 앞에 있어야 됩니다. 아들의 마음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게 달라요. 아들이 '영원히 이 이상의 사람은 만날 수 없다. 이 이상 고마운 사람은 없다' 할 수 있는. 인간 세계에 이 이상 자기와의 인연이 깊고 이 이상 자기와 더불어 그러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할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아들의 마음 가운데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뭐가 어때서 그러느냐? 세례 요한이 잘 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을 전부 다 수습했을 것이고, 이스라엘 나라를 수습해 가지고 아무것도 없는 예수 앞에 자기 개인은 물론이요 자기 가정을 봉헌하고 자기 종족, 민족, 국가, 그 나라 전체를 다 바쳤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겠어요?

그렇게 되면 예수 앞에 있어서는, 그 예수의 마음 앞에 있어서는, 개인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계에서 누구를 꼽겠느냐 할 때 '아하, 그렇게 되면 세례 요한이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을 대표하여 누구를 뽑겠느냐 할 때도 세례 요한이고, 종족을 대표해서는 누구를 뽑겠느냐할 때도 세례 요한입니다. 민족을 대표하여 누구를 뽑겠느냐 할 때도 세례 요한이고, 나라를 대신해 누구를 뽑겠느냐 할 때도 세례 요한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거예요.

그런 마음에만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아들의 생활권, 아들의 일에 없어서는 안 되고, 백 퍼센트 그 아들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자기라는 게 없는 사람, 오직 그 아들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양자가 있다면 만약에 아버지가 그 아들을 불러 가지고 복을 준다 하더라도 아들은 '이 복을 혼자 가질 수 없다. 이 복은 내 것이지만 네 것하고 같다. 나눠 갖자'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아버지가.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수를 아들로 축복하면 '아버지, 나만 축복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 세례 요한을 내 대신 축복해 주세요' 할 수 있는, 그러한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 앞에 양자로서 직계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렇게 됐더라면, 세례 요한이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결혼하지 않은 그런 하나의 남자라면 어떻게 됐을 것이냐고 생각해 보라요. 결혼하지 않은 남자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예수와 그러한 관계에서 결혼하지 않은 남자로서의 세례 요한이었더라면 어떻게 될 것이냐? 만약에, 예수님에게 누이동생이 있다고 하면, 세례 요한을 매부 삼고 싶겠어요, 안 삼고 싶겠어요? 어때요? 예수님 인척 중에 나이 어린 이모가 있다면 이모부로 삼고 싶겠어요, 안 삼고 싶겠어요?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어차피 혈통적 인연의 자리로 흡수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직계권 내에 접붙이는 역사를 통해 가지고, 접붙이는게 뭐 나무에다 갖다 접붙이는 게 아니라구요. 예수의 직계 혈통권 내에 자동적으로 흡수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양자이지만 아들의 권한을 대신한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아니냐.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도 곤란하겠지요?'야야, 너는 뭐 혈통적으로 이렇게 외적인 양자니까, 네 아들딸은 절반은 우리 편이고, 절반은 저편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구요. 사위가 되든가 무엇이 되든가 하게될 때는 몽땅 품을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하늘이 세례 요한에게 30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한 것도 당연한 이치가 아니냐. 안 그래요? 이렇게 될 때는 틀림 없이 양자로서 직계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이러한 복귀역사의 복잡한 내용이 오늘날 타락한 인류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오늘날 신앙자들은 생각도 안 한다 이거예요. 그저, 믿으면 천당 간다 하는데 믿긴 어떻게 믿어요? 그저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거예요. 믿으면 된다는 거예요. 그거 장하긴 장하지만 그래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늘 구멍에다 실을 꿰는데, 꿰면 된다 해 가지고 꿸 수 있어요?

맞춰야지. 여기 올 때까지는 그저 맹목적으로 다가오면 되지만 맨 나중에 가서는 꿰야 된다구요. '이거 내 주먹 같은 신앙이니 들어간다' 한다고 그거 들어가나요? 올 때까지는 괜찮아요. 최후에 가 가지고는 그 모든 안팎을 맞추어야 됩니다, 이것을 무시한다면 천리원칙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결론이 되는 거라구요.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말하기를 믿되 종의 종으로서 믿는 때가 있어야 되고, 종으로서 믿는 때가 있어야 되며, 양자로서 믿는 때가 있어 가지고…. 그 다음에는 아들 자리의 대를 이어 가지고, 아들 때는 믿는가 아니라구요. 만나 가지고 뭐 편지를 하나요? 다 만난 다음엔 비로소 상대하는 것이지요. 만나 가지고 '아 당신 어떻습니까. 여기 가만 계시요. 내가 편지 써 드릴 테니' 그래요? 믿을 때는 거리가 있고, 상대할수 있는 여건이 자연스럽지 않게 될 때 믿는다는 말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러면 '참된 신앙길' 할 때 신앙길은 무슨 길이냐? 복귀의 길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종의 시대가 있어야 되고, 가정적인 종의 시대를 거쳐야 되고,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인 종의 시대를 거쳐야 되고, 세계적인 종의 시대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이스라엘이라는 그런 민족은 세계적으로 유리고객하면서 종의 역사를 남겨야 할 민족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종족적으로 종의 역사 남겨야 되고, 민족적으로 종의 역사를 남겨야 되고, 국가적으로 종의 역사, 뭐 개인적으로도 전부 다 그렇지요, 유리고객하는 민족입니다. 종은 생명이 없는 거예요.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거라구요.

오늘날 지금 여러분이 알다시피 여기 이스라엘 민족이 왜 세계에 유리 고객하면서 수많은 민족 앞에, 혹은 수많은 민족의 발굽 앞에 밟히고 총칼에 피를 흘려야 되느냐? 죄 없어도 억울한 자리에 있어야 해요. 그건 뭐 종이 그렇다는 거예요. 종의 신세라는 거. 다 양자의 사명을 다하여 직계의 대를 잇는 운명길을 가려 가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걸 그 자체는 모르고 있다구요.

오늘날 기독교는 무엇이냐? 기독교는 제 2이스라엘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잘 알아요. 제 2이스라엘권이 기독교라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회는 유리고객하는 역사를 거쳐오고 있습니다.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그 누구보다도 고귀한 내적인 인연을 갖고 있지만 인간세상에서는 종의 종의 놀음을 인계받아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 무슨 죄가 있어 죽였어요? 괜히 그래요. 무슨 죄가 있어 죽였나 말이예요. 괜히 미워하고…. 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저 동네방네 사람들이 동원되어 가지고 비방하누만…. 그 종이 잘되는 날에는 전부 다 탈바가지 뒤집어 쓴다는 거예요. 종이 종이 아니라, 종은 종인데 그 종을 그냥 뒀다가는 사탄세계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탄세계가 가만히 둘 수 없다구요. 신앙자의 길은 유리고객하는 종의 길을 벗어날 수 없다 하는 것이 이라 같은 원칙에서 불가피하다구요.

그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보다 치열하고 보다 가혹한 종의 운명의 길을, 직단거리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그러한 종교일수록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그 종교는 어떤 종교냐? 피와 죽음과 연결되는 교차로에서 허덕이면서 그 길을 개척해 나온 그런 종교가 될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기독교가 그러한 대표적인 종교다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추측할 수 있지요?

기독교를 통해 가지고 참된 종을 만날 수 있고, 기독교가 간 길을 넘어서 감으로 말미암아 양자를 만날 수 있고, 그 양자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직계 아들을 만날 수 있으며, 직계 아들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모를 만날 수 있다 하는 것이 전통적 행로다 이거예요. 이것이 직행길입니다.

종교 가운데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다구요. 종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종교, 개인을 수습하기 위한 종의 종교가 있고 말이예요. 종의 종교로서 가정을 수습하기 위한 종교가 있고, 혹은 민족을 수습하기 위한 종교가 있다구요. 이런 것이 많다구요. 또, 그다음에 양자적 종교가 있다구요. 양자의 형태를 대신할 수 있는 종교, 그런 것이 있다구요. 그러한 종교는 끝날에 가서 세계의 민족 앞에 수난받는 민족 종교가 돼야 되는 것이다 하는 것이 타당한 결론입니다. 그것을 극복해 넘어가야 하나님 마음속에 기억될 수 있는 무리가 된다구요. 그건 여러분들이 대개 짐작하리라 보고 있어요.

그러면 한민족, 우리 한국 민족은 어떠한 민족이냐? 지금 월남문제도 상당히 복잡한 줄 알고 있지만 한국 민족은 어떠한 민족이냐? 여러분, 이 민족이 어떠한 민족이냐? 아시아에 있어서 수난받은 민족의 역사를 가지고 이어져 나왔습니다. 또, 세계사를 두고 보면 어떠한 민족이냐?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그래도 이스라엘 민족보다는 낫다구요. 이스라엘 민족은 그야말로 나라 없이 2천 년 동안 그렇게 유리고객하다가 용케도 지금 유대 나라,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 가지고 독립 국가가 돼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