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슬픔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097권 PDF전문보기

두 종류의 슬픔

이 미국 나라, 여러분 현재 미국 하면 모든 나라가 추앙하는 입장에 있지만, 미국 역사, 짧은 미국의 역사를 두고 보면, 그 역사 이면에는 반드시 슬픈 사연이 엮어져 있고, 눈물이 있는 것을 우리는 엿보게 된다 이거예요. 그거 그렇지요? 짧은 미국 역사 가운데도 그렇다구요.

그러면 그 슬픈 일이라는 것이 뭐냐? 정상적 기반이 침해를 당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상적 환경이 어떤 것이냐? 유년시대로부터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 일생을 두고 볼 때, 병이 없고, 수난이 없고, 슬픔이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게 정상적이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나라면 나라가 세운 목적을 향해서 혹은 각 개인이 자기 목적을 향해서 갈 때,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정상적인 자리가 아니냐.

그런 것이 정상적이라면, 그 정상적인 길을 우리 인간 개인 개인이 전부 다 가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굴곡이 많다는 거예요. 그러면, 굴곡이 많은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사람은 자기 때문에, 즉,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그 굴곡된 길을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한 두 종류 가운데에 슬픈 일을 당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우리 나라면 나라에 있어서도 슬픈 날을 기억하든가, 혹은 애국자들이 걸어간 그 날을 기념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적에 언제든지 생각하는 것이…. 그들이 애국자로서 나라를 위해서 충성했다는 것은 반드시 보통 정상적인 자리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을 중심삼고 슬펐던 일은 나라니 무엇이니 후대니 하는 사람에게 아무 관계가 없다구요. 도리어 그것은 듣기 싫어하고 남기기 싫어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렇지마는 남을 위해서, 공적인 입장에서 전체를 위해서 눈물을 흘린 것은 기억을 하고 상기시키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 과정에서 엿볼 수 있더라 이거예요. 그거 그래요?

우리가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을 보게 될 때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다 나쁘냐 이거예요. 거기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법을 어기고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곳에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공적인 면과 전체를 위해 가지고, 나라가 잘못하면 나라의 일을 위해서 반대하다가 감옥에 간 사람도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슬퍼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국민 하게 되면, 슬픈 것을 싫어하고 눈물을 싫어하는 국민이다 하는 것은 이 세계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어떤 집회 같은 데에서도 조크하고 웃는 것은 참 중요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요?「예」그러면 미국 사람들이 역사 과정에 남았던 슬픈 사실과 눈물을 흘렸던 사실을 저버리고 웃으며 그것을 존경 안 하느냐? 그것을 존경 안 하느냐 이거예요. 거 이상하잖아요?

박물관에 가 보게 되면 역사 과정에 있어서의 비참하였던 모든 사실을 진열해 놓았습니다. 죽고 뭐 싸우고 다 비참하게 되어 있는데, 공적인 면에서 생명을 걸고 싸운, 생명을 걸고 슬퍼한 사실을 쭈욱 진열해 놓았다구요. 그렇지요? 거 뭐예요? 사실 외국 사람들은 그거 싫어하는데, 왜 역사에 남았던 그것을 보관하려고 하고 말이예요, 그것을 귀하게 여기려고 하느냐?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그 슬픔 가운데 두 종류가 있고, 눈물을 흘린 사람이 두 종류가 있는데, 전체를 위해 슬퍼하고 전체를 위해 눈물을 흘린 사람이 가장 귀하다 이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나라가 숭상하고 세계가 높여야 된다 하는 것을 예고하는 거예요, 예고.

미국 사람들이 전부 다 기쁨을 좋아하고 만족을 좋아한다면, 오늘날 그 사람들 자신에 대해서 그저 기뻐하고 자랑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써 살기를 그 국가와 역사는 원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현재에 사는 사람들도 슬픔과 눈물을 흘리기를 바라고 있다 이거예요. 남을 위하고 정의를 위해서 살아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 국민들 중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면, 2억 4천만 미국 국민들이 다 행복하다고 춤추고 노래하고 웃으며 야단하고 사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만이 미국의 장래를 염려하고 미국의 국민을 염려하여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며 산다고 하면, 어느 쪽이 역사적인 인물이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을 것이냐 이거예요. 어느 쪽이예요? 피눈물 흘리고 걱정하고 슬픈 노래를 부르고 슬픈 말을 하는 것이 좋아요? 그게 잘 살아가는 거예요? 그거 생각할 문제라구요. 특별히 미국 젊은 사람들이 더 생각할 문제예요.

자, 미국 청년들에게 '야, 너희들 슬퍼하자'고 하면, 슬퍼하며 따라올 사람 있어요? 있다고 봐요, 없다고 봐요? '그 슬픈 건 그만두고 눈물 흘리고 살어. 눈물 흘리자'고 하면 차버린다 이거예요. 매일같이 스테이크를 하루 삼 시 세 끼 찾아 먹여 주고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파티가 있다고 할 때, 그런 클럽이 있다 하면 거기에 참석하고 가입하려는 미국 청년이 얼마나 될까요? (웃음) 거 웃을 일이 아니예요. 심각한 문제라구요. 여러분들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이거예요.

그러면, 왜 그러냐 이거예요. 왜 그렇게 슬픔 중에도 전체를 위해 슬퍼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취급하려고 하고 남기려고 하고 말이예요, 개인을 중심삼고 슬퍼하고 개인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건 전부 다 고개를 돌리고 잊어버리려고 하느냐 이거예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거 누가 그렇게 주장하고, 누가 그렇게 세웠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세웠다고 하는 소릴 여러분도 들었어요? 그렇다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