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감옥에서 나오면서부터 재출발한 공의의 길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00권 PDF전문보기

흥남감옥에서 나오면서부터 재출발한 공의의 길

방금 협회장이 말했지만, 오늘을 맞이하니 1950년도 이날을 생각하게 됩니다. 만 28주년이 되는 이날을 생각하게 될 때, 소감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고 세월은 빠르다는 거예요. 세월은 빠르다 하는 소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엊그제 같아요. 엊그제, 벌써 만 28년이 되었는데, 생각하면 엊그제 일 같다 이거예요.

그때에는 통일교회 자체도 없었고, 선생님 혼자 고고한 몸으로, 이북 땅에서 몰리는 몸으로 나와 가지고 남한을 향해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 사실인데, 그 엊그제 같은 기간이 28년이 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꿈과 같은 사연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통일교회가 한국에서 기반을 닦고, 그 다음엔 일본을 거쳐서 미국으로, 전세계까지 이제는 문제의 집단으로서, 문제의 종교단체로서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짧은 꿈같은 28년 기간이었다 이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때 선생님의 나이가, 지금 58세이니까 몇 살이예요? 「만 30세입니다」30세라구요. 30세라면 새파란 청년이지요? 여기 30세 되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얼마나 되나! 30세. 여기는 몇 사람 안 되는구만. 30세 이하, 한번 손들어 봐요? 많을 거라구요. 30세 하게 되면 상당히 젊을 때입니다. 그때로 말하면, 선생님도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청년시대였는데, 그때에 감옥에서 나오면서 다시 결심한 것이 뭐냐 하면 재출발이었다구요, 재출발. 아무리 어려움이 북한 땅에서 있었다 하더라도 그곳에서의 모든 어려움을 잊고, 그 어려웠던 사실이 내가 가는 길 앞에 손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제2의 출발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자극제로 역사노정에 남을 것을 각오하면서 재출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때가 그런 연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삼팔선을 넘어 가지고 쭉…. 그것을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길지요. 이렇게 해서 쭉 남한으로…. 경주를 거쳐 부산까지 오는데 한2개월쯤 걸려 도착했어요. 그때 부산에 와 보니까 피난민들이 꽉차 가지고, 어디 은신할 수 없을이만큼 꽉차 있었다 이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토굴을 파고 피난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예요.

그 기간에 있어서 인간으로서 자립하여 살기 위해서 경제적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해야 했기 때문에 별의별 일을 다 했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문선생 하게 되면 훌륭한 분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못 하는 일이 없습니다. 노동판에 가게 되면 노동자가 되는 것이요, 혹은 공장에 가게 되면 직공이 되는 것이에요. 그런 경험이 참많다구요. 바닷가에 가게 되면 뱃사람이 되는 것이요, 산에 가면 산사람이 된다 이거예요. 임기응변이다 이거예요. 임기응변과 같이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소질을 많이 갖고 있다구요. 자연적 소질보다도 훈련시킨 소질이다 이거예요. 자신이 훈련해 가지고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립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되지 않고는 이러한 엄청난 큰 뜻을 성사시킬 수 없다구요.

만일 자기가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 반대받아 학문하는 길이 막히게 되어 그 길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면 반대의 길을 가야 된다구요, 반대의 길. 그 반대의 길을 가 가지고도 뜻을 이룰 수 없게 된다면 또 다른 길을 가서라도…. 나는 어떠한 길을 통해서라도 뜻의 길을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에, 감옥에서 나온 30대의 젊은이의 몸 가운데는 새로이 출발한다는 결의가 강했다구요. 그것이 엊그제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