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 낮은 자리에 서야 할 통일교회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02권 PDF전문보기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 낮은 자리에 서야 할 통일교회

자, 이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이 기쁜 하나님이고,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믿는 것처럼 영광의 하나님, 뭐 복 주는 그런 하나님으로 알아요? 「아니요」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하나님을 찾으려는 것이냐? 요거라구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는 그 자리에서 자기를 생각할 여지가 없다 이거예요. 자기의 체면과 위신을 다 망각한 자리에 서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권위 있는 사람이 참사랑을 위해서 슬퍼한다고 해서 누가 평할 사람이 있느냐? 그걸 찬양한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평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오, 하나님이 저래?' 그러겠어요? 하나님 당신이기 때문에 인간은 미치지 못하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찬양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럴 것 같아요? 「예」 어떤 사랑하는 아내가, 부부끼리 정답게 살다가 아내가 죽은 다음에 그 남편이, 그저 위신이고 체면이고 없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걸 미국 국민이 볼 때 '저놈의 대통령이 저게 무슨 꼴이야?' 그러겠어요? 전부 다 존경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우리가 어디를 표준하느냐? 여러분이 아까 높고 좋은 곳이라 했는데 그곳이 어떤 곳이냐? 그게 뭐냐 하면, 뭣이라구요? 「참사랑이 있는 곳이요」 참된 사랑의 곳이다! 오늘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영광 가운데서는 그 사랑을 찾지 못하는 거예요. 그 반대의 자리에서 찾지 않으면 참된 사랑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이론적이라구요. 이 길이 많지만 이것이 전부 다 헛길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헛길이라고 하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이것이 틀렸다고 볼 수 있느냐? 참된 사랑이라는 걸 중심삼고 볼 때 전부 틀렸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참사랑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은 어떤 길을 갔느냐 이거예요. 한번 알아 보자구요. 십자가의 길을 갔다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았어요? 십자가의 길을 갔다구요. 그러면 누굴 위해 죽었어요? 「인류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자기가 무슨 학교를 지어서 대학 총장을 하기 위해서, 무슨 당파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뭣 때문에 죽었어요? 왜 죽었어요, 왜? 남을 구해 주려다가 죽었다구요, 남을 구해 주려다가.

자, 보라구요. 자식이 사지에, 물에 빠졌으면 물에 빠진 그 자식을 구해 주고 대신 물에 빠져 죽은 부모를 대해서 참된 부모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가 참된 부모다 이거예요. 또 친구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자기가 대신 죽고 그를 구해 주게 되면 그는 진짜 친구다 이겁니다. 그렇지요? 「예」 그런 말은, 트루(true)라는 말은 그러한 곳에 쓰여지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거예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월남 같은 망하는 나라를 미국이 대신 희생하면서라도 구해 준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어떨까요? '오! 미국은 참된 나라로구만' 하는 거예요.

자, 우리 통일교회, 여기가 어디예요? 이게 통일교회예요. 통일교회는 도대체 어떤 곳이예요? 요즈음에 세계의 종교인들이 말이예요, 목사, 기독교의 종교인들이 세상에서 불신임받고, 전부 다 깍쟁이고 돌팔이라고 별의별 욕을 먹는 이 세상에서 통일교회는 그 반대의 길을 가자 이거예요. 기성교인들은 말이예요, 푼돈이나 나면 연보를 하고, 푼돈이나 나면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지만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푼돈을 구걸해다가 그 전체를 남을 위해 쓰자 이거예요. 그들은 쓰다 남은 걸로 남을 동정해 주고 그러지만 우리는 구걸해다가 백 퍼센트, 내 몸까지도 갖다 바치자는 겁니다. 누구를 위해서?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는 이 놀음을 하자는 겁니다.

우리는 고생하고, 우리는 잠도 못 자고, 먹을 것을 못 먹고 청춘을 다 바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는 섭섭해도 말을 못 하고 말이예요. 그렇게 못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안 사는 거라구요. 어떤 부모들은, 오늘의 미국 사람들은 '통일교회 사람들은 먹을 것도 잘 안 먹이고 전부 다 착취한다' 하지만 잘못 알았어! 여러분들이 얼굴이 창백해져 가지고, 입지 못하고 이렇게 거리에 나서서 헤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예요.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그런 놀음을 하는 거예요. 그것은 세계를 구하자는 겁니다. 그렇게 못 먹고, 못 입고도 남을 위해 기도하고 눈물 흘릴 수 있고 통곡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분통해서 울며 오던 하나님도 '저 무니를 보고는 내가 울면 안 되겠다. 내가 참아 가지고라도 무니를 위로하고 나서 울어야 되겠다' 이럴 수 있는 하나님의 입장을 우리가 세워 보자 이거예요. 통곡하며 오던 하나님이 무니를 만나기 직전에 그런 결심을 하며 대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입장을 만들 수 있다면 이는 위대한 무니라고 나는 생각한다구요.

왜 그러냐 하면, 무니가 그동안 너무나 슬퍼했고, 너무나 비참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더 비참한 입장을 무니에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하나님이 선다면 그 자리는 놀라운 자리예요. 이보다도 더 훌륭한…. 아까 말하던 그 센터보다 더 훌륭하다구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것이 하나님 자신이 찾아오는 입장, 보통 입장보다도 더 전진된 입장인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다구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나님이 슬퍼하는 이상 우리가 슬퍼했기 때문에 그 슬퍼하는 아들을 만나는 그 순간에도 위로할 수 있는 입장을 취해 보겠다고 하는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놀라운 자리다 이거예요. 우리는 그런 사랑을 목표로 하고 나간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