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극복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의 힘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12권 PDF전문보기

역사를 극복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의 힘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최후의 표준을 무엇으로 삼느냐? 기독교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고 전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이거예요. 예수님은 어느 한때 지나간 분이지만, 오늘 현실생활에 있어서 그분을 만나기 위한 간절한 생활적 표시입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자의 표시일 것이고, 불교면 불교 신앙자의 표시일 것입니다. 또, 각종파도 그런 내용의 인연을 따라서 신앙을 지녀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 과정을 거쳐간 모든 성현들이 오늘날 현실에 있어서 어떻게 그 만남의 가치를 재현할 수 있느냐? 이것은 지식 가지고도 안 되고, 돈 가지고도 안 되고, 권력 가지고도 안 됩니다. 진리 가지고도 안 됩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말 가지고 가능하다 이거예요. 사랑은 역사를 포괄할 수 있다 이거예요. 또 역사를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공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포괄할 수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 자신을 통해서 '당신은 그렇게 능치 못함이 없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데, 당신이 있고 싶은 곳이 어디요? 힘을 가진 환경에 있고 싶습니까?' 하고 물어 보면, '노' 한다는 거예요, '아니다'라고. 무슨 지식을 가진 입장에서 내가 제일 높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있고 싶으냐? 우리 인간이 바라는 돈? 그거 다 아니라는 거예요. '나도 사랑의 공기 가운데, 사랑의 환경 가운데, 사랑의 보좌에 앉고 싶다' 하나님도 그런 결론을 안 내릴 수 없다구요. 그건 왜 그러냐? 순간을 넘어서 영원을 포괄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시공을 넘어서 찾아가야 할 그런 입장의 사랑이 아니겠느냐. 사랑의 공기 가운데, 사랑의 분위기 가운데, 사랑의 자리 가운데 있고 싶다 이거예요.

그렇게 사랑의 자리에 있고 싶은데, 그 사랑의 자리에 있으면 억천 날을 혼자 취해 가지고 있고 싶으냐? 아니다 이거예요. 인격적인 존재라면,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귀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듣고 싶고, 말하고 싶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을 것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런 문제가 대두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할 때에, 그는 아무리 사랑의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분위기에 취해 산다 하더라도, 취한다는 것보다도 만지고 보고 비비고 느끼고 싶은 분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인격적 신이 아니다 이거예요.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사랑의 인연 가운데서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와 서로서로 만남의 자리를 필요로 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자연적인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오늘날 신앙자들에게 있어서 역사를 초월해 가지고 2천 년 전에 왔다 갔던 그리스도면 그리스도가 오늘날 현실에 어떻게 재현할 수 있겠느냐? 시간성을 초월한 그 권에서 작용할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의 주파를 통해서는 역사를 극복할 수 있고, 모든 시공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는 사랑을 통해서 만나기 위한 생활이 신앙생활이 아니냐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