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 사랑을 가져야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26권 PDF전문보기

본질적 사랑을 가져야

그래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거냐? 이것을 결정짓는 겁니다. 자, 이것을 결정지으면 어떻게 되느냐? 신이 나와 관계하면서 직접적 주체자로서의 신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은 내 생활에 영향을 주는 주체적 존재이고, 나는 대상의 자리에 서는 겁니다. 내 마음이 기뻐야 내 몸도 기쁘지요. 안 그래요? 내 마음이 고통스러운데 몸이 기뻐요?

마음이 무한히 확산되고, 무한한 대상세계와 관계를 주고받을 수 있는, '나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의 행복이 무엇이냐 이거예요. 아하! 영원불변의 사랑의 주류 사상권 내에 서 있고, 이것이 확장되면 개인도 기쁘고, 가정, 종족, 세계 전체가 기쁠 수 있는 하나의 모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정이 되면 가정의 기쁨이요, 사회에 나가면 사회의 기쁨이요, 국가면 국가,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어디 가든 기쁠 수 있는, 모두가 필요로 하는 핵으로서 사랑에 서 있는 그런 기쁨이어야만 돼요. 어떤 한 민족, 한국 민족, 일본 민족, 공산세계, 자유세계의 투쟁 개념을 중심삼고 원수시하는 그런 입장에서의 기쁨이 아니다 이거예요. 원수권과 동하고 넘어설 수 있는 기쁨의 본질이 거기에 충만해야 됩니다. 충만하면 무엇이 가능하냐?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일반적이고 막연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사랑입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런 것을 중심삼고 볼 때에, 섭리사를 통해 나온 하나님 앞에 있어서 과거의 하나님은 타락한 세계를 섭리해 나오던 하나님이예요. 그 하나님이 타락한 세계를 섭리하시면서 그 세계에 있는 것을 좋아하시느냐? '싫어, 싫어, 싫어' 하십니다. 이것을 격파해 버리고, 타파해 버리고 새로운 해방권에 선 자유스러운 하나님, 섭리사를 완전히 포기하고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하나님, 이제부터는 섭리사적 생활에 얽매여서 살 것이 아니라 본연의 사랑을 중심삼고 자주적으로 살 수 있는 자체 자주장권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그런 것을 하나님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성교회라든가, 일반 신학자들, 종교인들은 그런 하나님에게 복만 달라고 해요, 복만. 복받겠다고?

요전에 제주도 가 가지고도 식구들을 만나 가지고 물어 봤다구요. '통일교회를 왜 믿느냐?' 했더니 '복받기 위해서요' 하더라구요. 그 복이라는 게 무슨 복이예요? 이렇게 볼 때는 세상적이예요. 세상의 종교인들이 말하는 것은 '아이고! 종교를 믿으면 복받는데…' 전부 다 자아주관적이예요. 이거 도적놈 심보들이라구요. 주체자로 계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지 않는다구요. 그분이 주인이고 나는 그 앞에 설 수 있는 손님이요, 대상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대상적 요건만을 위주로 한 종교 개념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심정권에 배치된다 이거예요. 왜 그러냐?

오늘날 세상살이가 실은 고통의 생활이예요. 타락한 세계는 이율배반된 생활권이예요. 몸과 마음이 반대로 돌고 있다구요. 그 가운데 있으니 그건 고통받게 돼 있다구요. 돈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예요. 돈이 많아도 고통이예요. 지식이 많아도 고통이예요. 권력이 많아도 고통입니다. 현실 위주와 미래의 계속적인 환경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그 기로에서의 고충은 클 거라구요.

윤박사도 그렇지? 공부하다 보니 이게 '나는 요만큼 작아. 알고 보면 알고 볼수록 점점 작아져. 이게 뭐야?' 그러다 죽어가는 거예요. 나를 자랑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서 있는 레버런 문이란 사람은 못났지만 한가지 뚜렷한 목표를 향해서 가고 싶은 그 하나의 결정적인 내용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시대에 아무리 개인적인 생활 환경이 어렵더라도 극복하자, 극복하자! 극복해 나가야 돼요. 무슨 힘 가지고? 문 아무개의 결심 가지고? 그게 아니예요. 본질적 사랑이 얼마나 강하더냐 하는 그 체휼적 힘 가지고예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강하더냐 하는 체휼적 사랑의 힘 가지고 부딪치는 거예요.

열과 냉이 부딪치게 될 때에 열이 강하면 냉을 소화할 수 있는 거예요. 냉한 것이 강하면 열을 소화할 수 있는 거라구요. 만일 내가 수난길에 부딪치더라도 이 수난길을 헤쳐 나가자! 소화시키고 나가자! 진짜 본질적 사랑, 본질적 양심기준은 부딪쳐 가지고 깨지지 않고 반드시 전부 다 획─ 뒤로 돌아 붙는다는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딪치게 되면 깨지지 않고 훌쩍 돌아서 뒤로 붙는다는 겁니다. 그런 작용을 한다구요. 운동법칙은 그렇습니다. 돌아가는 거예요. 깨지지 않으면 말이예요.

바다에서도 배가 휙 지나가면 물이 어디로 가요? 휘익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 운동을 한다구요. 운동하던 것이 이렇게 휘익 돌아 가지고 그냥 그대로 하나되어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힘이 있다면, 그 본질적 힘이 있다면 모든 것을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이 어떤 작용보다 강하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맨 처음 흐를 때에 갈라져서 흘러 가지고 배 밑창의 끝에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뒤로 돌아와 붙는다는 거예요. 조화가 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