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는 타락으로 잃어버린 것을 복귀하려는 제물의 역사 - [8대교재교본] 말씀선집137권 PDF전문보기

인류역사는 타락으로 잃어버린 것을 복귀하려는 제물의 역사

이걸 복귀하기 위해서는…. 사탄이가 위에 있고 하나님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차자를 하나님이 취해서 장자의 자리를 복귀하는 역사를 해 나오는 거예요. 이것이 개인으로, 가정으로, 종족으로, 민족으로, 국가로, 세계까지 해 나오는 거예요. 이 장자권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장자는 형님인데 형님을 차자로 만들고 차자가 형님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법이 없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고 장자로 태어나면 그 부모의 계통을 이어 가지고 부모님 대신 차자를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의 권한은 차자를 지배할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이후 사탄이가 장자를 취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차자를 지배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걸 복귀해야 하는데 강제로 복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사탄적 사랑으로 말미암아 차자권을 하늘이 취했기 때문에 장자권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사탄의 사랑 이상의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사탄편 타락한 사랑, 타락한 부모 혹은 타락한 형님, 타락한 세상이 갖고 있는 모든 사랑, 이러한 사랑은 전부 다 사탄권에 속한 사랑인데, 이 사탄권의 사랑이 뭐냐 하면 장자권에 속한 사랑이예요.

오늘날까지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그 사랑, 부부의 사랑이라든가 부모의 사랑이라든가 자녀의 사랑이라든가 사랑이라고 하는 모든 사랑은 장자권, 타락권에 속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자권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차자의 자리에서 꺼꾸로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탕감이라는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탕감하는 데는 무얼 갖고 탕감하느냐? 사랑의 희생,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피흘리는 자리까지 나가야 돼요. 그래서 구약시대에도 피를 흘린 것입니다. 엊그제 얘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구약시대는 뭐냐? 모든 만물의 피를 흘려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양자, 이렇게 보는 거예요―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예요.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는 전부 다 만물을 희생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시대예요. 피를 흘리지 않고는 안 됩니다. 또 피를 흘리는 데는 강제로 흘리게 해서는 안 돼요. 자진해서 해야 돼요. 자진해 가지고 희생의 피를 흘리는 그런 곳이 아니고는 사탄세계의 사랑보다 낫다고 하는 사랑의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제물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사탄편 소유 물건을 하나님편으로 돌이키는 하나의 조건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역사노정에서 확실히 몰랐지만 그런 역사로 거쳐온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인간세계에는 제물을 드리는 놀음이 벌어진 거예요. 이 제물 가운데는 만물 제물, 뭐 소를 잡아 제사하든가 돼지를 잡아 제사하든가, 그다음에 더 나아가서는 여자들을 잡아 제사를 지내든가 한 거예요. 그런 인연이 거기서 시작되는 거라구요.

제사라는 걸 드리는 데는 어떻게 드려야 되느냐? 자기 생명 대신 드려야 합니다. 드리는 데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본래 장자의 자리를 찾아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걸 갖지 않고는 돌아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기 위해 희생해 나간 것입니다. 사랑의 제물로서 희생했어요. 자진해서 희생하는 이 입장을 세워 놓지 않고는 하늘로 돌아갈 길이 없는 거예요.

신약시대는 어떤 때냐?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와 가지고 기독교―기독교는 양자권이예요―권을 중심삼고 희생하면서 나오는 거라구요. 그러면 기독교권은 무엇이냐 이거예요. 신약시대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아들딸들, 하나님의 사람을 희생시켜 가지고 무엇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냐 하면 부모님을 복귀하기 위한 거예요, 부모.

기독교는 형제, 가인 아벨 복귀예요. 장자가 사탄편이 됐으니 차자가 장자의 자리에 올라가는 데는 세계적으로까지 올라가야 돼요. 그러한 세계적 사명을 기독교가 지금까지 역사를 대표해서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핍박을 받으면서, 기독교가 지금까지 피를 흘려 나가면서 사랑을 갖고 전부 다 봉사하고 희생한 거예요. 그래도 그 형이 사랑하는 동생을 때리고 천대하고 구박하고 할 짓을 다 했어요. 그러나 그 이상 더 할 수 없는 그런 한계선에 도달하더라도 형님을 대하는 동생은 죽을 때까지 사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원수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왔다 간 모든 세계 사람은 장자예요. 먼저 난 사람은 장자예요. 장자권입니다. 맨 나중에 난 차자권에서 장자권을 탕감복귀하려니 온 세계 사람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런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그러면서 제물 대신 피를 흘리지 않고는 넘어갈 길이 없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십자가의 도리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모른다구요.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느냐 하는 문제, 왜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제물이 돼야 되느냐 하는 문제….

이것은 장자권이라는 엄청난 오류를 범한 이 기준을 바로잡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원 뿌리가 바로잡아져야 돼요. 원 뿌리가 바로잡아지지 않으면 과정도 바로잡을 수 없고 결과도 바로잡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을 바로잡아 놓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구약시대는 만물을 희생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었고, 그다음에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부모님이 올 길을…. 재림주가 누구냐는 거예요. 신랑이 신부를 찾아오는데 그 신랑이 누구냐?

우리 인류가 본래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람, 장자가 되어 가지고 장자로서 장녀인 해와하고 하나가 되어, 비로소 여기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을 낳았더라면 장자니 차자니 하는 탕감복귀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태어난 첫아들이 하나님의 장자요, 다음에 난 아들도 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타락했기 때문에….